2017. 7. 24. ~ 7. 29.
지난 두번의 레분섬 여행에서 이동하는 방법은 삿포로로 도착하여 왓카나이로 육로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도쿄에 도착해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왓카나이까지 비행기로 이동 후 같은 날 배를 타고 들어갔다. 왓카나이의 근사한 위스키바를 들를 수 없었던 것은 무척 아쉽지만, 이 방법이 훨씬 편하기는 하다. 도쿄에서 왓카나이까지 비행시간은 두 시간 정도 되는데, 이 정도라면 인천 오사카 비행시간보다도 더 길다. 꽤나 먼 곳에 가는 것이라는 실감이 난다.
5박하는데 숙소를 세 군데나 예약해야 했다. 성수기는 성수기인가 보다. 첫날 이틀은 항구 근처의 펜션 우니, 그 다음날 하루는 미츠이 간코 호텔, 다음 이틀은 시레토코에 있는 하마나스 민박. 펜션 우니는 두번째 방문이라 오미야게(선물)을 들고 갔는데, 상대방이 대단히 기뻐하는 것을 보니 내가 쑥스러워졌다. 하네다 공항에서 큰 박스의 브라우니를 집었다가 약간 작은 것으로 바꾼게 좀 후회되었다. 펜션 우니의 아버지, 어머니, 아들 모두 돌아가며 고맙다고 했고, 다음날 도시락도 돈을 받지 않고 싸주었다.
이곳에서의 첫날 저녁식사는 정말 즐겁다. 꽤나 맛있는 긴 코스요리가 나오는 것이다. 도합 8코스 정도 될까. 음식 하나하나에서 정성이 느껴지고 맛도 좋은데, 평범한 테이블 위에 밋밋한 식기위에 나오기 때문에 약간 더 극적으로 느껴진다. 이런 맛이 날거라고는 생각 안했겠지, 라는 심정으로 서빙을 하는 것은 아닐까. 올해에는 모시조갯국과 누카홋케(레분섬 근처에서 잡히는 임연수어) 맛이 특히 좋았고, 성게모양 감자는 언제봐도 귀엽다.
다음날 아침, 수코톤 곶으로 향한다. 바람은 세고 바다는 차갑고 언덕은 푸른곳. 이곳에 대한 기억으로 결국 이곳에 세번째 오는 것이다. 숙소는 붐빌지 몰라도 이곳을 걷는 사람은 별로 없다. 대부분은 버스로 와서 사할린쪽을 바라보며 나름 유명한 아이스크림을 먹고 사진 몇장을 찍고 돌아간다. 이것도 그 나름대로 즐기는 방식이겠지만, 나로서는 약간 이해되지 않는다. 이곳은 도쿄에서 두시간 걸려서 날라오고(혹은 삿포로에서 다섯시간 기차를 타거나 여섯시간 차를 타고), 세시간 배를 타서 들어오고, 한시간 버스를 타야지만 비로소 도착하는 곳인데, 삼십분 정도 머물면서 잠시 북방영토와 오호츠크에 시선을 던지고 돌아가는 것이다. 이곳까지 도착하는 데 걸린 수고로움을 별것 아니라는 듯이 여기는 그 초연함에 오히려 약간 놀랍다고 할까.
트레킹 코스에는 저 멀리 점으로 보이는 여자 한명, 앞서 걷는 느긋한 중년 부부가 전부였고, 수카이 곶까지 가니 조용하지 않은 중국인 가족 하나가 있었을 뿐이다. 이번에는 길을 다듬어 주는 사람을 마주쳤는데, 역시 비가 자주와서 풀이 무럭무럭 자라는 이곳에 하루 몇 명 다니는 것만으로는 길이 유지될 리가 없다. 제초기를 매고 길을 내주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인기없는 이 길을 계속 내주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느낀다.
이 트레킹코스의 시점은 수코톤 곶이고 종점은 하마나카 정류장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수카이 곶에서 모험은 끝나는 기분이다. 그리고 하마나카의 정류정까지 약 한시간 정도는 포장도로 옆의 인도 위를 걷는다. 이 포장도로는 그 전까지의 길과 다르게 평범하지만, 처음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면서 뒤로 바라보는 바다가 햇빛을 반사해서 근사하게 보이는 점과, 걸어다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 지루함을 달래준다.
종점 하마나카에서 조금 더 걸으면 병원이 있고, 이 근처에 섬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를 내려주는 카페 단이 있다. 첫날에는 이곳에서 아이스 커피와 카레밥을 먹었고, 나중에 왔을때는 따뜻한 커피 두잔과 레몬타르트를 먹었다. 밥도 커피도 디저트도 맛있었다. 중년 부부라고 해야 하나 노년부부라고 해야 하나, 정확히는 부인은 중년이지만 남편은 노년인 부부가 운영하는데, 작년에는 부인이 커피를 타주었고 올해는 남편이 커피를 타주었는데 둘 다 괜찮다. 이곳에는 간혹 뱃일을 나가지 않은 동네사람들이 와서 사투리로 크게 떠들기도 하고(사투리라고 짐작하는 까닭은 우리나라 강원도 억양과 비슷한 말이 들리기 때문), 뭍으로 애인을 떠나보낸 젊은이가 연애편지를 읽고 쓰기도 한다.
레분섬의 모든 트레킹코스를 다 걸어본 것은 아니지만, 꽃을 감상하면서 편하게 걷기 좋은 곳은 모모이와 트레킹일 것 같다. 시작 혹은 종점을 항구 근처에서 할 수 있다는 잇점도 있고, 야트막한 언덕만 오르면 능선처럼 걷기 편한 길이면서도 한편은 바다, 다른편은 푸른 들판을 보면서 걸을 수 있다. 꽃의 종류나 수도 북쪽길에 비하면 훨씬 많다. 지난번에는 안개가 짙고 비가 약간 흩뿌렸는데, 이런 날씨 역시 신비한 느낌이 들어서 이것대로 좋다. 걷는 사람들도 제법 많다.
한번은 항구 근처에서 자전거를 빌려 수코톤 곶까지 다녀왔다. 가는데는 두어시간 걸렸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맞바람이 불어와서 세시간 이상 걸렸다. 중간에 카페 단에서 커피를 두어잔 마시지 않았으면 더욱 힘든 여정이 될 뻔했다. 풍경은 단조로웠지만, 버스가 가지 않는 레분공항(사용하지 않는다)도 가볼 수 있었고 운좋게 바다표범이 놀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마지막 날 이틀은 섬 남부 시레토코로 숙소를 옮겼다. 근면한 부부가 꾸려나가는 하나마스 민박이다. 주변에 구멍가게 하나 없지만 아침 일찍 잡아올린 성게도 구경할 수 있고 지나가는 사람을 일부러 불러세워 닭꼬치도 하나 줄 만큼 인심도 좋다. 리시리 섬의 산도 아주 잘 보이고, "북쪽의 카나리아"라는 영화의 셋트장도 가깝게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심심치 않은 곳이다. 날씨가 좋으면 근사한 선셋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레분섬의 숙소는 대부분 섬 동쪽에 몰려있기 때문에 선셋을 보기에 적당치 않지만 이곳은 최남단이기에 서쪽을 보는 것도 가능하다.)
(성게, 즉 우니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바훈 우니, 무라카미 우니. 바훈 우니가 좀 더 비싸고 풍미도 강하다. 바훈의 의미는 말똥이라고 한다. 어두운 것이 바훈 우니)
섬을 나오는 배에서 갑판을 보니, 레분섬에서 탄 것 같은 갈매기가 앉아 있다. 잠깐 배에 올랐을뿐인데 두시간 넘게 망망대해만 펼쳐지니 꽤나 불안할 것 같다. 계속 두리번대는 녀석을 보고 있자니, 나도 어쩌다가 좀처럼 내릴 수 없는 배에 탄 것 같은 기분이다.
무사히 돌아갈 수 있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