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마니아풍의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 - 작품 편
누보 쏠레이: 안녕하세요, 마티스 선생님. 오늘은 보기만 해도 마음이 편해지는 작품 <루마니아풍의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la Blouse roumaine)> (1940)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볼까 합니다. 이 작품은 선생님의 경력에서 후반부에 속합니다. 이 시기 선생님의 삶은 어땠을까요?
마티스: 그림이 그려진 시기의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장소를 옮겨야겠군요. 당시 저는 프랑스 남부 도시 니스(Nice)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니스라는 도시는 1916년 기관지염을 앓던 시기에 의사의 권유로 휴식차 머물렀던 곳이기도 합니다. 1920년에 들어서 니스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이 도시는 저의 두 번째 고향으로 느껴집니다. 이곳에서 그동안 접하지 않았던 다른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오달리스크'를 그리는데 전념했습니다.
누쏠: 이 시기의 작품은 이전 그림들과는 다른 특징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뭐랄까요... 훨씬 장식적이라는 느낌이 강한 것 같습니다. 주제도 이국적인 것을 다루게 되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마티스: 당시 유럽 전반에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이국적인 문화에 대한 관심과 동경이 높아져 있었습니다. 전쟁의 상흔과 불안한 사회 분위기에서 니스라는 따뜻하고 이국적인 휴양지와 아름다운 모델과 풍부한 색, 화려하고 관능적인 오달리스크는 일종의 현실도피적 역할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누쏠: 선생님 이전의 대가들이 그렸던 오달리스크와는 사뭇 다른 특징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보는 게 좋을까요?
마티스: 오달리스크를 그린 대표적인 두 거장은 앵그르와 부셰 선생입니다. 이 두 분의 오달리스크는 이상화된 여성의 아름다움을 그린 티치아노 선생의 비너스와의 유사성을 보입니다. 여기에 약간의 장식과 옷차림으로 이국적인 분위기를 내는데 집중하셨죠. 하지만 저는 장식적 요소, 강렬한 색채 그리고 평면적인 표현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이를 통해 전통적 관능미보다는 생동감, 활력, 그리고 이국적 분위기를 더 잘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누쏠: (약간의 실례를 감수하며) 확실히 과거의 대가분들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에로틱한 느낌은 거의 나지 않습니다. 뭐랄까요... (뭔가 깨달은 듯) 인물이 풍기는 육체적 아름다움보다는 오히려 전체적인 장식과 색채에 더 눈이 가는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마티스: (웃으며) 그렇죠? 그림이 줄 수 있는 것은 사실적인 장면의 전달만이 아닙니다. 저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그려내는 것이 제겐 순수한 기쁨의 원천입니다.
누쏠: 이 시기의 그림을 <니스 시기>(1917-1929)라고 부르는군요. 하지만 선생님의 <루마니아풍의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과는 느낌이 전혀 다릅니다. 그 사이에 어떤 일들을 겪으신 건가요?
마티스: 저는 니스 시기 이후 또 한 번의 변화를 시도하고 싶어 졌습니다. 과거 야수파 시절의 시도를 이어나가고자 하는 것이었지요. 1929년 미국 여행 시기에 저는 제29회 카네기 국제음악회에서 심사위원을 맡았습니다. 때마침 유명 사업가이자 미술 수집가 앨버트 반스(Albert Coombs Barnes, 1872-1951)씨가 벽화를 의뢰했고, 저는 야수파 시절의 '춤'을 주제로 선택했죠.
누쏠: <춤>의 벽화 버전이라. 정말 기대됩니다!
마티스: 벽화버전의 <춤>에서는 기존 야수파의 <춤>에서 보다 더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의 단순화를 시도했습니다. 인물들의 역동적인 자세를 더욱 강조하고 배경의 색조차 기하학적으로 분할했죠.
누쏠: 벽화의 사이즈라고 생각하니 움직임이 훨씬 압도적으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을 준비하시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기법이 탄생했다고 들었습니다.
마티스: 뭐 당시 벽화를 제작하기 위해 실험으로 해보던 "종이 자르기"기법 말씀이시군요. 재미 삼아해 보던 중 발견한 기법이 이후 제 예술가로서의 수명을 연장해 줄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허허. <재즈>는 그림책을 위한 작업이었는데, 그림책이라는 매체의 가벼움에 적절히 어울리는 기법이었죠.
색을 자르는 방식이 마치 조각가가 직접 조각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점을 두고 디자인되었습니다. - 앙리 마티스 -
누쏠: 정말 선생님의 인생은 미술을 위한, 미술의 의한, 미술의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티스: 그런가요. 허허. 제 예술과 삶의 전환점이 일치하는 구간이 있긴 했습니다. <춤> 벽화를 그릴 때였습니다. 당시 엄청난 작업량 때문에 조수로 리디아 델렉토르스카야(1910-1998)를 고용했죠. 그녀는 조수일뿐 아니라 제 그림을 모델도 되어주었습니다.
누쏠: 설마... 그녀가 새로운 뮤즈가 된 건가요? 아내분께서 적잖이 놀라셨겠습니다.
마티스: 아멜리는 제게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그녀를 택할지 자신을 택할지 말이죠. 결국 저는 리디아를 해고했지만 아멜리는 제게 이혼을 요구했고 저희의 31년간의 결혼 생활은 끝이 났습니다. 지병이 재발했고, 저는 리디아를 다시 고용하여 함께 지내게 되었습니다. <루마니아풍의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은 이 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누쏠: 그러고 보니 <춤 II>와 벽화 <춤>, 그리고 <재즈>는 <루마니아풍의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과 유사한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 <루마니아풍의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의 표정과 자세는 참 신비롭습니다. 수줍은 듯한 표정과 온화한 인상이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꼭 잡은 두 손은 순종적이거나 친절한 그녀의 태도를 보여주는 듯도 합니다. 그녀가 입은 옷은 선생님의 다른 작품에서도 본 것 같습니다.
마티스: <꿈>(1940) 말씀이시군요. 네, 같은 해인 1940년에 완성한 작품입니다. 잠에 빠져든 여인의 소녀 같은 모습을 단순한 색과 선, 그리고 장식으로 표현했습니다. 원근법을 사용하지 않음으로써 색채와 형태가 주는 느낌을 더욱 직접적이고 단순한 방식으로 전하고 싶었죠.
누쏠: 색과 형태의 단순화를 통해 추상으로 이행하는 듯했는데, 한편으로 장식이 강조되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추상의 대표적인 거장인 몬드리안이나 칸딘스키와 같은 분들은 장식적 요소를 거의 배제하신 걸로 압니다.
마티스: 장식적이라고 추상적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추상은 목적이 아니라 방법일 뿐이죠. 예술가에게는 모든 도구를 이용하여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추상은 화가의 게으름으로 비칠 수가 있지만, 예술가는 추상까지 사용해야만 온전히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그림 그리기의 겉보기에 쉽고 태만해 보이는 모습만 보고,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어떤 노력을 회피할 핑계로 삼을까 봐 두렵습니다. […] 이처럼 느리고 고통스러운 작업은 필수적입니다. 사실, 정원을 제때 파지 않으면 곧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계절마다 땅을 갈고닦아야 하지 않습니까? […] 수년간의 준비 끝에야 젊은 예술가는 색을 표현할 수단이 아니라, 친밀한 표현의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자신이 사용하는 모든 이미지와 심지어 모든 상징조차도 사물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반영할 수 있기를 바랄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순수하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않고 교육을 마쳤다면, 그 반영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분별력을 가지고 색을 사용할 것입니다. - 앙리 마티스 -
누쏠: 선생님의 <루마니아풍의 블라우스를 입은 여인>을 보며 왠지 모를 편안함과 순수함이 느껴진 것은 단순화를 통한 순수성을 추구하신 선생님의 노력의 결과라고 봐야겠군요. 혼란스러운 세상과 제 마음이 선생님의 그림을 통해 평안을 찾는 것 같습니다. 불완전해 보이는 선생님의 그림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사람이 왜 많은지 이제 조금씩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꿈꾸는 것은 혼란스럽거나 우울한 주제가 아닌, 균형과 순수함, 평온함이 담긴 예술입니다. - 앙리 마티스 -
마티스: 한 인간의 삶에는 수많은 괴로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픔과 고통, 이별과 외로움 등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외부 요인들에서 벗어나서 가벼운 기쁨을 줄 수 있다면 제 예술은 그것으로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항상 내 노력을 숨기려고 노력했고, 내 작품에 봄날의 가벼운 기쁨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 앙리 마티스 -
누쏠: 인간에 대한 위로와 사랑이 느껴지는 예술과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너무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독자분들도 선생님의 예술을 한층 더 깊게, 그리고 가볍게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마티스: 네, 감사합니다.
### 본 매거진은 크라우드펀딩 (텀블벅) 후원을 통해 제작된 아트카드에 등장한 작가와 작품 이해를 돕기 위해 해설을 위해 발행되었습니다. 곧 스마트스토어를 통해서도 구매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