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니체 16일 차 - 길동무를 찾아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머리말

by Homo ludens

[새로운 창조를 향하여]

송장을 나무에 묻어주고 차라투스트라는 오랜 잠에 듭니다. 아침놀과 함께 깬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의 외부와 내부를 살폈습니다.

마침내 그는 눈을 떴다. 그리고 놀란 듯이 숲과 숲 속에 감도는 적막을 들여다보았다. 놀란 듯이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러더니 홀연히 뭍을 발견한 뱃사공이라도 되는 양 서둘러 몸을 일으켜 세우고는 환호했다. 새로운 진리를 발견한 것이다....

"한 가닥 빛이 떠올랐다. 이제는 길동무들이, 내 어디를 가든 지고 갈 수밖에 없는 죽어 있는 길동무나 송장이 아니라 살아 있는 길동무들이 있어야겠다."

차라투스트라가 눈을 뜬 것은 신체의 눈과 내면의 눈을 동시에 개방함을 의미합니다. 그의 깨달음의 눈은 이제 혼돈의 바다 저편에 있는 또 다른 대지로 향합니다. 그가 발견한 새로운 대지는 얼마간 새로운 진리로 여겨질 곳이며, 이곳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항해자들의 모험심, 호기심 그리고 용기입니다.

Herodotus_world_map-de.svg.png 헤로도토스의 세계관 속의 유럽,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는 에게해를 중심으로 문명을 발전시켰고, 소아시아의 레반트지역에서 미노스섬으로 다시 그리스의 본토에 이르는 바닷길을 통해 선진문물이 전파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바닷길은 새로운 정보와 기술, 그리고 풍요와 생존을 향한 기회를 여는 장이였습니다. 당시 문명의 수준이 높았던 소아시아 지역에서 바라볼 때 서쪽은 지금의 유럽의 위치였기 때문에 아카드어 또는 페니키아어의 '태양이 지는 서쪽'이라는 뜻의 유럽(europe)이라고 명명되었습니다. 생존과 번영을 위해 배를 타고 나서야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망망대해 앞에서 좌절과 허무에 빠져있었습니다. 이때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은 바다로 나섰고 그들의 이름은 영원히 기억될 수 있었습니다. 이들 영웅과 마찬가지로 위버멘쉬의 뜻을 가진 차라투스트라는 분연히 일어나 안전을 외치는 이들을 뿌리치고 바다로 나아갑니다. 그는 수명을 다한 낡은 가치와 질서에 결별을 고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새로운 길동무를 찾아 즐거운 고독의 여정을 시작하려 합니다.




Arnold_Böcklin_-_Die_Toteninsel_III_(Alte_Nationalgalerie,_Berlin).jpg
1280px-Böcklin_-_Die_Lebensinsel_-1888.jpeg
왼편: <죽음의 섬> 세번째 버전, 아놀트 뵈클린, 1883; 오른편: <생명의 섬>, 아놀트 뵈클린, 1888

스위스의 예술가 아놀트 뵈클린(Arnold Böcklin, 1827-1901)은 5가지 버전의 <죽음의 섬>을 남깁니다. 죽음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C자 모양의 죽음의 섬으로 배 한 척이 향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무덤으로 보이는 이 섬에는 원초적 건축물을 상징하는 여러 문들이 창문 하나 없는 것으로 보이는 방들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방들은 영혼의 안식처로 모든 영혼의 종착지이자 모든 영혼이 출발지입니다. 이 섬의 구조적 형태는 아이가 태어나는 여성의 자궁을 상징한다고 해석되기도 합니다. 뵈클린은 <생명의 섬>이라는 작품도 남기는데 여기서는 짝을 이룬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걱정 없이 현재를 즐기고 있습니다.


차라투스트라의 여정은 고독이 기다리고 있는 <죽음의 섬>으로 향하는 용기를 통해 진정한 길동무가 있는 <생명의 섬>으로의 이행입니다. "오늘을 즐겨라(carpe diam)"는 현재의 충만한 행복을 온전히 누리는 것을 의미하고 그것은 고독을 통한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발견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차라투스트라의 여정에서 그는 어떤 행복의 의미를 전해줄까요?



다음 콘텐츠는 매주 월요일 무료로 공개되며, 멤버십 구독을 통해 전편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이전 16화매일 니체 15일 차 - 산 자와 죽은 자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