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니체 17일 차 - 뱀과 독수리?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머리말

by Homo ludens

[위버멘쉬와 영원회귀]

새로운 길동무를 찾아 떠나는 차라투스트라는 자신이 "창조하는 자"가 되기를 결심합니다. 창조하는 자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 함께 창조할 길동무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자들에게 현재의 가치는 '경멸'의 대상입니다. 현재의 선악에 대한 기준에 얽매여 있으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한때 왕들은 무조건적인 '선'이었고, 그들에게 대항하는 존재는 '악'이었습니다. 한때 사제들은 '선'이었고, 그들에게 대항하는 자들은 '사탄'이었습니다. 여성인권운동이 일어나기 전 순종적이지 못한 여성은 '나쁘게' 평가되었고, 노예제도가 폐지되기 전까지 '좋은' 노예와 '나쁜'노예의 기준은 순종적이냐 반항적이냐로 정해졌습니다. 이 모든 가치의 변화는 기존의 '선악'의 개념을 바꿔놓았고, 그것은 "창조하는 자"들의 의지와 노력, 그리고 도전과 희생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이들이 차라투스트라의 "길동무"가 될 수 있을까요?


보라! 독수리 한 마리가 커다란 원을 그리며 하늘을 날고 있고 뱀 한 마리가 거기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먹이가 아니라 벗인 듯했다. 목을 감은 채, 뱀이 독수리에 의지하고 있었으니.

"내 짐승들이다!" 차라투스트라는 말하고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저 태양 아래서 가장 긍지 높은 짐승과 저 태양 아래서 가장 영리한 짐승이다. 무엇인가를 알아내려고 나타난 것이다."

차라투스트라의 "길동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내 짐승들"이 차라투스트라의 길동무입니다. 물론 인간 역시 동물에 포함됩니다. 하지만 여기서의 "짐승"은 광의적 의미로 이전까지 인간으로 취급받지 못하던 인간을 포함할 수 있는 것들을 의미합니다. 즉 새로운 가치의 창조를 상징하는 것들이 차라투스트라의 벗이 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후에도 여러 동물을 통해 "위버멘쉬"에 대한 설명을 해줍니다. 낙타, 사자와 같이 인간 영혼의 단계에 대해서도 굳이 동물에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그중 독수리와 뱀은 매우 깊은 상징성을 가진 동물들입니다.

왼편: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페터 파울 루벤스, 1611-1612; 오른편: <아담와 이브>, 알브레히트 뒤러, 1504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Homo luden···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Homo ludens의 브런치입니다.

125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1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80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7화매일 니체 16일 차 - 길동무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