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니체 28일 차 - 연민과 앙갚음?

<창백한 범죄자에 대하여>

by Homo ludens

[연민과 앙갚음]

차라투스트라는 판관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판관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이들 모두를 가리키는 말로 우리 스스로가 자신과 타인에 대해 선악을 판별하는 기준과 관점을 의미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판관의 판단이 "자아(Ich)"에 기반할 때 옳고 그름의 기준이 명확해지는 점에 주목합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명확한 사람의 눈에는 다른 모든 이들의 티끌만 한 잘못된 점이 사람 전체에 대한 경멸로 이어집니다. 도덕적 기준이 법과 같이 명확할 때, 왜 사람들은 경멸의 시선을 가질까요?


판관들이여, 그런 자를 죽여주되 그것은 연민에서 우러나온 행위여야 한다. 앙갚음이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를 죽여주면서 너희 자신은 그럼으로써 생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라!

차라투스트라는 선악의 명확한 기준을 가진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해 경멸을 느끼는 것이 '앙갚음(Rache)'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가령 모두가 줄을 서고 있을 때 끼어드는 사람이 생길 경우, 나의 시간의 손해만큼 혹은 그 이상의 손해를 그 사람에게 주고 싶은 복수심이 생깁니다.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감정의 발로처럼 보입니다. 나에게 손해가 생기는 만큼 보상이 아닌 처벌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차라투스트라는 이러한 '앙갚음'은 이미 지나간 과거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합니다. 수동적으로 타인이 자신에게 가한 행위에 대해 피해자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차라투스트라에게는 전혀 발전적이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을 연민(Mitleid)의 감정으로 보기를 바랍니다. 독일어로 연민은 함께 mit 고통을 느끼는 것(Leid)을 의미합니다. 즉 타인의 고통과 고뇌를 이해하는 것이 연민입니다. 앙갚음과 달리 연민은 보다 우월한 자가 약자에게 갖는 감정입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자신보다 못한 이들과 자신보다 우월한 이들은 상대적으로 결정되며, 보다 못한 이들에 의해 우월한 자들의 탁월함이 정당화된다는 점을 말합니다. 도덕은 자신이 어디에 속하느냐에 따라 재평가됩니다. 우월한 자들은 자신들을 위한 주인의 도덕 Herrenmoral을, 열악한 자들은 자신들을 위한 노예의 도덕 Sklavenmoral을 따르게 됩니다. 그렇다면 주인 혹은 노예로 태어난 사람이 자신의 운명을 벗어날 수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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