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서문
[나다울 권리]
밀이 <자유론>을 통해 우리에게 '나다울 권리'를 지키는 것이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자유를 얻은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은 여전히 공백으로 남아있다. AI는 우리에게 모든 선택지 가운데 가장 효율적인 답을 찾아주고, 그로 인해 우리는 많은 여분의 시간을 얻게 될 것이다. 하지만 확보된 자유는 자칫 공허한 방황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밀은 우리에게 자유의 광장을 확보해 주었고, AI는 무한의 도구를 제공한다. 이제 그 광장에서 무엇을 하며 축제를 벌일지 답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강제에서 자율로, 노동에서 유희로]
밀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나의 개별성을 발현하는데 제한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자유의 기본이라는 것을 밝혔다. 우리가 이익을 목적으로 한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는 점에서 개인의 개별성의 발현은 타인에게 해악을 끼칠 위험은 언제나 존재한다. 따라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강제는 필수불가결하며, 그 경계는 언제나 과도할 정도도 개별성을 침범하는 방향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놀이는 어떠한 물리적 강제력도 없는 '자율적 선택'이며,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활동이다. 생산의 주체라는 짐을 벗어던진 인간은 놀이를 다시 일하기 위한 일종의 충전의 기능으로만 사용하던 것에서 벗어나서, 놀이를 통해 추가적 생산을 기대할 수 있다. 요한 하위징아는 문명의 모든 고귀한 것, 즉 법, 전쟁, 예술, 철학과 같은 것들이 놀이의 형식에서 기원했다고 본다. 노동에서 유희로의 전환은 우리가 오랫동안 잊어왔던 기원으로의 회귀일지도 모른다. 우리를 강제하는 법조차, 자유로운 인간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산물일 뿐 그것이 우리의 기원은 아니다. 규격화된 알고리즘을 깨는 유일한 힘은 규칙 이전의 '놀이하는 인간'의 즐거움을 찾는 행위에서 비롯되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규칙은 재정의된다.
1부 '자유'에서 밀의 <자유론>을 통한 자유의 의미를 파악했다면, 2부 '놀이'에서는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를 통해 자유를 향유하는 법에 대해 논해보고자 한다. 3부 '책임'에서 자유의 향유 방식의 고귀함에 대해 다루기 위한 발판으로써 '놀이'는 무책임한 방종이 아닌, 스스로 부여한 질서 안에서 누리는 자유의 형식이다.
2부 '놀이'편은 한 주 쉬고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