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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mo ludens Sep 29. 2024

<멋진 신세계> #0

프롤로그

제목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 1894-1963)는 1932년 <Brave New World>를 출판한다. 여기서 'brave'는 지금의 '용감한'이라는 뜻이 아니라 셰익스피어 시대에 쓰이던 '아름다운'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폭풍우(tempest)>의 5장 1장에 등장하는 문구에 영향을 받았다.

<미란다 - 템페스트>,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오, 놀랍구나! 여기 얼마나 많은 선한 생물들이 있는가! 얼마나 아름다운 인류인가! 오, 멋진 신세계여, 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이구나!>


이 구절에는 셰익스피어의 아이러니한 의도가 숨겨져 있다. 미란다는 그녀의 순수함 때문에 섬사람들의 사악한 본성을 인식하지 못하여 그녀의 아버지 프로스페로에게 위와 같은 대사를 하게 되었다. 헉슬리는 순진무구한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유토피아를 보여준다. 여기서 순진무구하다는 의미는 비판의식의 결여상태를 뜻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멋진 신세계'는 시민들의 비판의 가능성을 아주 영리한 방식으로 제거한다.


자발적 복종

헉슬리는 <1984>의 저자 조지 오웰(George Orwell, 본명 Eric Arthur Blair, 1903-1950)에게 편지를 쓰며 자신이 <멋진 신세계>에서 제시한 과두정권의 모습이 오웰이 제시한 폭력적인 지배방식보다 더 효율적으로 다음 세대에 등장할 것이라 말한다. 사회 비평가 닐 포스트먼은 "오웰이 두려워한 것은 책을 금지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헉슬리가 두려워한 것은 책을 금지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책을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실제로 헉슬리는 채찍과 곤봉보다 유아 세뇌와 최면이 더욱 효율적인 통치 방식이며 "사람들에게... 노예 상태를 사랑하도록 제안함으로써 (욕망을) 완전히 충족"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결국 헉슬리가 만든 세계관 속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셰익스피어의 <폭풍우>에 등장하는 미란다와 같이 비판 능력이 상실된 자발적 복종 상태에 놓인 노예와 같다. 헉슬리의 작품에는 니체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은 듯하다. 니체의 '주인의 정신'과 '노예의 정신', '위버멘쉬', '고독' 등은 <멋진 신세계>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또한 예술이 인간의 삶에 대한 필수적이라는 생각 역시 두 위대인 인물이 공유하는 생각이다. 14장의 <죽음에 익숙해지는 훈련>과 16장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17장의 <불행해질 권리>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다루는 철학적 담론을 문학적으로 표현했다.

따라서 헉슬리가 그리고 있는 <멋진 신세계>에는 자유와 상실되고 불행의 자리에 '안락'이 자리 잡은 철저히 '길들여진' 인간들이 묘사된다.


재방문

헉슬리는 초판이 나온 지 27년이 지난 1959년 <재방문한 멋진 신세계>라는 제목의 논픽션 작품을 내놓는다. 27년 전 그가 그렸던 미래와 당시의 현재를 비교하며 그는 그의 생각보다 훨씬 빨리 '멋진 신세계'로 이행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소설에서 상상했던 '엡실론' 계급의 부화는 증가하는 인구의 속도와 빈부격차로 인한 계급의 고착화를 통해 상당 부분 현실화되었고, 약물을 통한 잠재의식의 통제는 남미의 마약 산업의 증식을 통해 가시화되고 있었다.


어떤 세계에 살고 싶을까? 행복이란 무엇일까?

만약 우리에게 어떤 세계, 어떤 국가에 살고 싶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안전하고 안정된 부유한 국가"라고 답할 것이다. 물리적 안전과 경제적 안정은 어느 정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는 현대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과연 자신의 국가와 세계에 만족하고 있을까?

삶에 대한 만족도를 하나의 보고서로 이해하는 것은 지나칠지 모르나 적어도 52위의 행복지수를 기록한 나라의 시민들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행복'하지 못할까? 보다 근본적인 질문은 '행복이란 무엇인가?' 헉슬리가 제시하는 <멋진 신세계>는 공유, 균등, 안정, 만족, 쾌락이라는 행복지수의 긍정지표로 가득한 세계다. 불만족, 불평등, 불쾌감이라는 단어는 부정성이 포함되어 있다. 우리의 목표가 정지상태의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늘 변화하는 자신의 상태와 기분은 정지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도달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찰나로만 지속할 뿐이다. 니체는 '행복'을 찾는 방법을 보다 솔직하게 고백한다. "보다 더 욕망하는 것". 결국 정지 상태는 도달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도달하는 즉시 공허해지고 만다. 이러한 허무의 늪에서 탈출하는 방법으로 니체가 제시하는 해답은 "고독"인 반면, 신세계에서 제공하는 해답은 "약물"이다. 그것도 철저히 부작용이 제거된 완전한 약물.


멋진 신세계에 머무는 선택을 한다면 그것은 마치 매트릭스의 세계 속에 살겠다고 결정하는 것, 즉 투쟁을 포기하고 노예로 살 것을 결심하는 것이다. '안정과 만족'을 덕목으로 삼는 곳에서 '도전'과 '의욕하기'는 유흥거리 이상의 가치가 없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천천히 읽어보며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행복과 시스템은 관계는 무엇일까?, "행복은 소유를 통해 이루어지는가?" 등의 사유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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