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파주: 문학동네.
최근에 다시 소설과 영화의 결말이 화제가 되고 있어 예전에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다시 올린다. 결말에 대해서라면 나는 소설의 편이다.
김영하의『살인자의 기억법』은 기억의 허망함에 대한 얘기인 동시에, 역설적으로 인간은 기억으로 살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얘기하는 소설이다.
김영하가 기억이라는 주제를 다룬 이유는 본인의 사적 체험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김영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연탄가스를 마셔서 그 이전의 기억을 모두 잃어 버렸다고 한다(오양진, 2006,「트래블 가이드의 수업시대(68쪽)」,『작가세계』, 70호). 추측해 보건대 <내 머리 속의 지우개>의 각본 작업에 참여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다(‘기억’의 의미에 관해서라면 영화 <내 머리 속의 지우개>가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보다 더 진지하게 묻는다).
인간은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문제는 기억을 자기 방식으로 왜곡한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2011/2012)의『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떠올랐다. 이 소설은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취약한지, 그 취약한 기억을 바로잡을 수 있는지에 대해 묻는다. 공교롭게 이 소설도 영화화 되어 <살인자의 기억법>이 개봉했던 2017년에 국내에 개봉됐다. 원작과 영화 모두 기억이 얼마나 취약하고 자의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기억을 바로 잡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른 결론을 내린다. 이동진의 표현을 빌리면 “뒤늦은 회한의 끝에서 인간은 고쳐 살 수 있을까. 원작은 아니라고, 영화는 그렇다고 한다(http://blog.naver.com/lifeisntcool).”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기억의 허망함에 대해서는 가령 다음과 같은 구절.
“은희와 나누었던 그 많은 대화들은 다 뭐란 말인가. 모두 내 머릿속에서 지어낸 것들이란 말인가. 그럴 수는 없다. 어떻게 상상이 지금 겪는 현실보다 더 생생할 수 있다는 말인가(142쪽).”
기억의 절대성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
“오이디푸스는 무지에서 망각으로, 망각에서 파멸로 진행했다. 나는 정확히 그 반대다. 파멸에서 망각으로, 망각에서 무지로, 순수한 무지의 상태로 이행할 것이다(129쪽).”
인간은 기억에 의존해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그 기억은 불완전 할 수밖에 없다는 역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