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너머’에 있는 것

권여선, 「너머」, 『아직 멀었다는 말』. 파주: 문학동네.

by 노창희

권여선 소설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낙차다. 나는 이걸 수직적 낙차와 수평적 낙차로 구분하여 얘기해 보고 싶다. 수직적 낙차는 시간과 관련된 것이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로 구분하여 처지를 비교해 보는 것을 수직적 낙차라고 해보자. 불행하게도 권여선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과거에 비해 현재에 더욱 불행하다. 하지만 이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현재 행복한 사람의 얘기가 소설이 되기는 어렵다. 수평적 낙차는 나와 처지가 다른 타인 사이의 격차다. 당연하게도 수평적 낙차 역시 내 처지가 어려운 경우에 소설이 된다.


「너무」는 수평적 낙차에 관한 얘기다. 가장 선명한 대비는 삶의 마지막을 앞두고 있는 주인공 N의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8, 9, 10층에 입주해 있는 요양병원과 11층에 입주해 있는 피트니스 클럽 사이의 낙차다. 이 대비는 거의 잔인할 수준이다. 요양병원은 N의 어머니와 같이 죽음을 앞두고 있는 노인들의 공간이다. 피트니스 클럽은 육체적 활기가 넘치는 공간이다. N은 노인들이 피트니스 클럽을 드나드는 젊은이들을 보는 시선 불편하다.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N은 어머니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2달짜리 기간제 교사 일을 시작한다. 교장은 두 달 동안 휴직할 예정인 교사의 몸상태가 좋지 않아 휴직 기간이 더 길어질 수 있다고 얘기한다. N의 계약이 기간이 두 달보다 길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소설에서 교장이 N을 채용하기 위해 내건 미끼임이 암시된다.


N은 학교에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정규직 대 비정규직 간에 묘한 긴장 관계를 느끼게 된다. 문을 고쳐달라고 담당자에게 요구했더니 자신의 호칭을 똑바로 부르라고 요구하여 당황한다. 자신은 기사님이 아닌 주무관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규직이었던 그는 주무관이라는 정식 호칭 외에 다른 호칭으로 불리는 것이 못마땅 했던 것이다.


무기 계약직이 된 조리사들과 선생들과의 갈등은 N의 선의지를 완전히 꺾어 놓는다. N은 짧은 기간이라도 성심성의껏 근무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무기 계약직인 조리사들을 무시하는 다른 선생님들의 태도를 보며 열심히 근무할 의욕을 완전히 상실한다. “이해타산은 단순해야 한다(149쪽).”


“복잡해 보이는 사태도 정규와 비정규를 가르는 경계만 알면 대부분 참으로 간단히도 이해가 되었다(141쪽).” 문제는 이 경계 너머이다. 정규직은커녕 무기 계약직 조차 될 수 있는 이들의 삶 너머에는 무엇이 남아 있는가? 치열하고 처절한 생계가 남는다. N은 병든 어머니를 보며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어쩌면 그 생물체는 어머니가 아니라 자신일 수도 있었다. 활기도 자유도 없이 바짝 쪼그라든, 기한이 없는, 무기의 죽음을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N의 머릿속에 소름끼치도록 확연하게 떠올랐다(1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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