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곤, 「그런 생활」
좋은 작품 앞에서는 취향 같은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요즈음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란 다음과 같다. 지적인 소설을 좋아한다. 내가 얘기하는 지적인 소설이란 지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소설을 의미한다. 조야하게 예를 들면, 철학자의 이름이 등장하는 소설을 좋아한다. 다음으로 작가와 관련성이 높은 작품을 좋아한다. 작가와의 관련성이란 화자나 주인공이 겪고 있는 일이 작가와 어떤 식으로든 연관을 맺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수하면서도 보편적인 소설을 좋아한다. 가령,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는 시인의 운명을 다룬 특수한 소설이다.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어떠한 세계에서 이방인이라고 느낄 수 있다는 측면에서 「토니오 크뢰거」는 보편성을 획득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인식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작품을 좋아한다. 소설은 삶의 어떠한 측면이 가지고 있는 양상을 다룬다. 개인적으로 소설은 대안을 제시해 주는 세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 그때 그러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해주게 해주는 작품이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나에게 인생에 관해 그런 식의 깨달음을 주는 것은 소설밖에 없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소설의 인식적 가치다. 사람이 언제 바뀌는 지 혹은 왜 도저히 바뀔 수 없는지에 대해 소설 보다 잘 얘기해 줄 수 있는 장르는 없다고 생각한다. 김봉곤의 소설은 내가 좋아하는 소설의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 준다.
「그런 생활」은 내가 느끼기에 김봉곤의 다른 소설들 보다 덜 지적이다. 이것이 작품의 결함이 될 수는 없다. 다음으로 작가와 관련성. 작품과 실제 작가의 삶의 관계가 김봉관과 박상영 만큼 중요한 작가는 대한민국에 많지 않을 것이다. 이 두 작가는 자신들의 성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며 소설을 쓴다. 하지만 그렇다고 소설이 실제의 삶 그대로는 아닐 것이다. 김봉곤의 소설들은 “실화이기도 하고 소설이기도 하(110쪽)”다.
「그런 생활」은 두 축의 관계가 갖는 지지부진함에 관한 소설이다. 한 축은 애인과의 관계. 바람기가 많은 애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 할지가 소설 속 등장인물 봉곤의 고민이다. 주변의 조언은 대체로 절대로 바뀔 리 없으니 관계를 정리하라는 것(사실 나도 이쪽에 한 표다). 다른 한 축은 동성애자로서의 정체성이 드러나 있는 소설을 써서 상을 받은 일을 봉곤의 엄마가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갈등이다.
두 갈등의 양상은 특수하면서 동시에 보편적이다. 따지고 보면 그렇지 않은 일은 별로 없는데 이것에 성공하는 작품이 있고, 그렇지 않은 작품이 있다. 어떤 연인 사이에도 갈등은 존재하고, 연인의 외도로 인한 갈등은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독자 입장에서 동성 연인 간의 갈등은 익숙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김봉곤의 소설들은 그러한 편견 없이 연인 사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사고하게끔 만든다. 아마도 작가에게 실제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본인의 소설이 세상에 주목을 받게 되면서 작품에 등장하는 성 정체성을 어머니가 알게 된 일을 얘기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봉곤과 어머니의 관계는 서먹해진다.
「그런 생활」에서 바람기 있는 연인과는 동거를 결정하고 어머니도 어느 정도 봉곤의 성 정체성을 수긍한다. 바뀔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삶이다. 자신과 가까운 타인과 함께 살고자 하면 더욱 더. “어쩌면 영원한 사랑은 없일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사랑 역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모습일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런 상상을 한다. 나는 요즘 그런 시간들로 이루어진 그런 삶을 통과하는 중이다(150-151쪽).” 타인의 그런 생활을 감당하면서 서서히 갱신이 이루어진다는 것이 「그런 생활」이 주는 인식적 가치라고 얘기한다면 조금은 시시해 보인다. 하지만 당연한 명제를 수긍하게 만드는 것이 좋은 소설이라고 얘기한다면 부족한 답변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