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창희 Oct 03. 2019

처음에는 비극으로 다음에는 희극으로

<조커>: 조커의 기원에 대한 또다른 해석

인류의 역사가 선형적으로 진보하지만은 않는다는 전형적인 사례 중 하나는 서사의 영역이다. 아직까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뛰어넘는 훌륭한 서사를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많은 서사들이 그 형태를 참고하거나 답습한다. 영웅들의 이야기인 코믹스를 기반으로 한 영화에서 서사의 발명은 그야말로 난제다. 마블이 각기 다른 메인 스토리에 등장하는 영웅들을 같이 등장시키는 이유 중 하나도 새로운 서사를 창안해 내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원형적 스토리를 활용하는 전형적인 방법 중 하나는 서사 이전의 기원을 만들어 내는 것이거나 달리 해석하는 것이리라. 그것은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 내는 것보다 열등한 행위일까? <조커>는 이 질문이 잘못된 것일 수 있다는 가장 강력한 사례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조커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는 정설이 없다는 것이 정설일 것이다. 토드 필립스 감독의 <조커>는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최후의 버팀목마저 무너진 아서의 분노를 다룬다. 아서의 분노는 희극과 비극 사이에 진동하는데 아서역을 맡은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이하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 아서 플렉은 고담시의 광대로 살아간다. 정신 질환이 있는 어머니에게 어려서부터 웃을 것을 강요당하는 아서는 코미디언이 되는 것이 꿈이지만 본인의 삶은 비극에 가깝다. 고령의 어머니를 돌봐야 하며, 자신도 정신 질환에 시달리고 있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상담을 받고 처방받은 약에 의존해서 살아야 하는 처지다.      


동료로부터 총을 받게 된 아서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토마스 웨인의 직원 세 명을 죽이게 된다. 이들은 하층민들의 경멸을 받는 월 가의 직원들로 아서가 살인을 저지를 당시 쓰고 있었던 가면을 쓴 채 폭동을 벌이는 시민들이 늘어나게 된다. 토마스 웨인이 이러한 시민들의 행동에 대해 비겁한 시민들이 하는 광대짓이라고 폄하하면서 양상은 더욱 과격해지게 된다.      


잊기 힘든 장면이 많은데 아서가 자신의 집에서 또다른 살인을 저지르고 분장을 한 채 거리를 활보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춤을 추며 웃는 아서의 행위는 희극적인 행동에서 오히려 비장미를 느끼게 하고 그 심상이 조커를 상징하는 웃는 모양과 겹쳐지면서 깊은 울림을 준다. 조커가 된 아서에게는 비극적인 삶이 개인에게 부여하는 비장미적 아우라마저 허용하지 않는다. 금융위기를 다룬 지젝의 책 제목을 빌려 아서가 자신의 삶을 대하는 태도를 요약해 보면 비극인줄 알았던 아서의 삶은 끔찍한 희극이 되어 버린다.      


고전적인 캐릭터는 당대의 상황에 맞게 다시 해석된다. 영화 <조커>에 의해 코믹스에 등장한 조커와는 다른 새로운 조커가 탄생되었다. <조커>는 코믹스 영화로는 처음으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은 것으로 화제가 되었는데 영화를 보고 난 입장에서는 별로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전형적인 선과 악을 설정하고 선이 악을 응징하는 형태의 상투적인 서사가 인기를 얻던 시기는 이미 지나갔기 때문이다. DC의 코믹스가 현대의 고전이라면 그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는 일이 상투적이어서는 비평의 영역뿐 아니라 관객을 끌어모으기도 힘들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하에 대한 불안이 초래한 비극으로 <기생충> 읽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