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밤은 책이다』.
내가 이동진이라는 영화 전문기자를 알게 된 것은 아마도 2000년이었을 것이다. 그 무렵 나에게 책을 읽어야 한다는 명제는 당위적이었고,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느냐는 난감한 선택의 문제였다. 그 와중에 읽기 시작한 것이 구어체로 된 이동진의 영화 이야기였다. 확실히 당시 이동진이 썼던 영화평들은 평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야기에 가까웠다. 이동진 팬 혹은 빠를 자처하며 살아온 지난 20여 년을 열어 준 책들은 바로 조선일보에 연재했던 영화 이야기를 묶어 낸 『이동진의 시네마 레터』와『함께 아파할 수 있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이다.
그 이후 강산이 두 번 넘는 시간이 흘렀고, 당연히 이동진도 변했고, 나도 변했다. 이동진은 영화 전문기자에서 영화 평론계의 아이돌이 되었고, 이제 나에게 독서란 읽을 책을 찾지 못해 난감한 일이 되었다기보다는 읽을 책이 너무 많고 시간이 없어서 난감한 과제가 되었다. 이동진, 책, 나의 관계로 넘어오자면 다음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일단 이동진과 관계된 책은 무조건 산다(몇 권 빠져 있을지는 모르나 나에게 발각된 책은 모조리 샀다.). 하지만 그 중 읽게 되는 책은 일부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팬이라면 당연히 이동진의 대표작으로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를 꼽아야 마땅하겠으나 영화 보다는 이동진의 팬인 나는 그의 대표적으로 『밤은 책이다』를 꼽고 싶다. 이동진이 구어체만을 고집해 오지 않은 세월이 한참이나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구어체로 된 글을 좋아한다. 좋아한다는 표현만으로는 부족하고 사랑한다라는 말은 어쩐지 어색하다. 이동진의 구어체에 대한 내 애정은 여기까지.
이동진이 엄청난 독서가 혹은 책 수집가라는 것은 그의 팬이라면 알고 있었겠지만 그를 독서계의 아이콘으로 만든 것은 팟캐스트 <빨간책방>이었다. <빨간책방>을 오랜 기간 들은 사람들은 안다. 그가 책을 어떤 방식으로 좋아하는지, 아니 사랑하는지를. 『이동진 독서법: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에도 독서에 대한 그에 태도가 드러나 있지만 『밤은 책이다』에 담긴 다음의 문장만큼 책에 대한 그의 태도, 그의 사랑을 잘 드러나 있는 문장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책에 담긴 이야기, 책에 서린 정신, 책에서 나는 냄새, 책을 어루만질 때의 감촉, 책을 파는 공간, 책을 읽는 시간 등이 모두 모이고 모여 책에 대한 사랑을 온전히 이루어낸다는 것이지요(7쪽).”
이동진은 여러 지면과 방송을 통해 자신은 읽기를 포함해 책과 관련된 모든 행위를 다 좋아한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밝혀 왔다. 이동진만큼은 아닐지라도 대책 없이 책을 사 모은다는 점에서는 이동진과 비슷한 나는 그 대책 없는 ‘덕질’을 이해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이동진 덕분에 별다른 죄책감 없이 다 읽지도 못할 책들을 사 대는지도 모르겠다. 이동진이 『밤은 책이다』에서 자신의 책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인용한 스피노자의 문장 “모든 한정은 부정이다(7쪽)”는 어쩌면 무모해 보이는 모든 비합리적 소비에 대한 변명이 될 수도 있겠다.
이제 이동진은 인쇄매체 보다 영상매체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반갑기도 하지만 아쉽기도 하다. 이제 그가 구어체로 쓴 글을 읽을 수 있는 기회는 더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밀리의 서재>에서 그가 『밤은 책이다』를 낭독했을 때 더없이 반가웠다. 언젠가 선물처럼 다시 한 번 구어체로 된 그의 책을 읽을 수 있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