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때문에 가능해지는 ‘사랑 밖의 모든 일들’

김금희.『사랑 밖의 모든 말들』.

by 노창희

김금희라는 이름을 들으면 ‘연애’라는 단어가 떠오르고 자연스럽게 ‘사랑’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것은 당연히 그가 쓴 소설들 때문일 텐데, 그가 쓴 연애 소설 치고 결말이 해피엔딩인 경우는 드물다. 아니 내가 읽은 소설 중에는 없다. 아마도 다음과 같은 김금희의 인식이 반영된 것일 테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연애에 능수능란한 사람이 몇이나 되나. 그래서 소설에서의 연애란 대개 얼마나 처참하게 실패하는가를 다룰 뿐, 흥미진진한 연애의 성공담을 담아내는 데 주력하지는 않는다(「연애 이야기를 듣는 밤」, 231쪽).”


나는 위에 인용한 문장에 소설이라는 장르의 결정적인 본질이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실패의 장르다. 그렇다고 실패에 대해 반성하고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내놓는 장르는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왜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 소설이라고 문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처음부터 내가 김금희의 소설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다. 특정 작품이 계기가 되었던 것 같지도 않다. 그저 기회가 되어 김금희 소설을 꾸준히 읽어 왔을 뿐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의 소설을 신뢰하게 되었는데,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내가 방금 얘기한 문학의 본질 즉, 우리는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김금희의 소설들은 예외 없이 수긍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김금희의 소설들은 보통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실패로 인해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희미한 전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런데 실패와 사랑은 뭔가 반대편에 놓여 있는 단어 같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 사랑을 해야만 실패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애초에 실패할 사랑 따위 왜 해야 하는가? “사랑은 우리에게 남은 최후의 보루, 최후의 온기인데 그런 것에까지 세상일이란 게 다 그런 것이라는 식의 냉소를 퍼부으면 곤란하다(「사랑하죠, 오늘도」, 115쪽).” 김금희는 임대형 감독이 연출한 <윤희에게>를 얘기하면서 동성인 준과의 사랑에 빠져 어려움을 겪게 되는 윤희가 다시 준을 만나게 되는 과정을 “사랑의 문제가 사랑 이외의 모든 문제를 다루게 되는 것(「사랑 밖의 모든 말」, 189쪽)”이라고 말한다.


그럼 이렇게 말해도 좋을까? 사랑 이외의 것들도 결국은 사랑 때문에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여기서 얘기하는 사랑은 단지 남녀 간의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타인을 이해하는 일, 나의 한계를 넘어서 시련을 극복하는 것도 사랑의 범주에 포함된다. 그래서 사랑은 당연하게도 어렵다. “그런 사랑의 어려움은 시대가 지나도 변하지 않아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매번 우리의 한계를 넘는 일이다(「연애 이야기를 듣는 밤」, 81쪽).”

한계를 넘는 일이 어려운 만큼 현실을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개인으로서의 나는 자본이 인간을 다루는 방식에 분노하고 저항하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의 가장 냉엄한 기록물인 소설은 그러한 낙관의 결말을 쉽게 용인하지 않는다(「우리는 친구는 아니잖아」, 73쪽).” 낙관적 결말을 기대하기 어려운 삶을 우리는 어떻게 견뎌야 하는가? 불행 앞에서는 모두 공평하다는 사실에서 위로를 찾는 것은 너무 비관적인 태도일까? “어떤 불행은 나를 비켜 가리라는 기대보다는 내게도 예외란 없으리라는 엄연한 사실 앞에서 위로 받는다(「우리의 해피 엔딩」, 231쪽).”


행복과 불행은 예측하기 어렵지만 긴 시간을 두고 보면 그럭저럭 순환의 주기를 갖기 마련이다. “삶이란 이 반복의 리듬을 어떻게 제대로 운용하는가의 문제가 아닐까(「또다시라는 미래」, 210쪽).” 이 삶은 나 혼자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 같이 불행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라도 버티어 나가야 한다. 사람 간의 연결이 그 어느 때 보다 그리운 지금 일상으로의 복귀를 낙관적으로 기대하기보다 서로 연결되어 있었던 때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지금의 불행이 나 혼자 겪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서 위안을 찾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지도 모르겠다. “개학을 연거푸 미루는 강력한 정책으로 가까스로 대유행을 막고 있는 아슬아슬한 요즘이지만, 이런 날들이 없었다면 서로 연결되어 있던 시간의 의미에 대해 지금보다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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