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창희 Nov 03. 2020

토끼의 윤리

홍의정. <소리도 없이>

홍의정 감독이 연출한 <소리도 없이>는 잊을 만하면 관객을 당황스럽게 하는 영화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을 미리 밝힌다. 태인(유아인 분)은 창복(유재명 분)이 시키는 일을 하면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간다. 그런데 창복이 하는 일이 예사롭지 않다. 그저 사람 좋아 보이는 창복이 달걀을 파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도입부만 보고 나서는 훌륭한 두 배우의 버디 무비일까? 라는 추측을 하게 한다. 하지만 창복과 태인이 시체를 처리하는 장면을 보고 난 이후에 관객은 대체 이 영화는 무엇인지 좀처럼 감을 잡기 어렵다.      


시체의 뒷수습을 부탁하던 실장이 사람을 하루만 맡아달라고 하면서 <소리도 없이>는 변곡점을 맞이한다. 창복은 그 일을 수락하지만 어떤 종류의 일인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토끼 가면을 쓴 초희(문승아 분)가 등장하는 순간 관객은 또다시 묻게 된다. 이 영화는 대체 무엇을 얘기하고 싶은 영화일까?     


홍의정 감독은 <소리도 없이>가 『별주부전』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어릴 때 접했던 『별주부전』을 읽은 친구들이 토끼보다 거북이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토끼가 얄밉다고 한 것을 부조리하게 느꼈다는 것(배동미, 2020. 10. 22,  ‘소리도 없이’홍의정 감독 – 생존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씨네21』. http://m.cine21.com/news/view/?mag_id=96346)『별주부전』의 내용을 떠올려 보면 충분히 설득될 수 인식이다. 토끼는 생존을 위해 거북이를 속였을 뿐이다.      


내게 <소리도 없이>는 극장에서보다 극장을 나선 후에 더 흥미 있는 텍스트였다. 극장에서는 『별주부전』을 떠올리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홍의정 감독의 『별주부전』에 관한 인식을 접하고 나면 <소리도 없이>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초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삼대독자의 누나인 초희는 동생 대신 유괴 당하지만 부모가 과연 2억이라는 돈을 주고 자신을 찾으러 올지 고민할 정도로 집안에서의 입지가 크지 않은 존재다. 납치되어 창복에 의해 태인의 집에 갇혀 있을 때조차 태인과 태인의 동생과 잘 지내면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고 노력한다. 초희의 이런 모습에서 초희가 집에서 어떻게 지냈을지 충분히 추정해 볼 수 있다.      


창복은 돈을 받으러 가는 과정에서 어이없이 죽게되고, 태인은 초희를 부모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 넘겨 처리하려 하지만 이내 후회하고 초희를 다시 데려오게 된다. 이 지점에서 관객들은 이제 초희가 태인의 집에 안착하여 유사 가족을 이루며 살게 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만든다. 하지만 홍의정 감독은 이런 관객의 기대를 다시 한번 배신한다. 선의로 초희를 학교로 데려다준 초희는 선생님에게 태인을 유괴범이라고 얘기한다.      


『별주부전』에서 거북이에게 감정이입 했던 독자라면 초희가 얄밉게 느껴져야 한다. 하지만 나는 초희에게 어릴 적 접했던 토끼에 대한 감정과 다른 감정을 느낀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상대방을 속여가며 생존해야 하는 구조 속에 놓인 존재이다. 그것을 ‘토끼의 윤리’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소리도 없이’ 초희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하는 부조리한 상황에 놓인 태인의 범죄는 어떻게 단죄해야 하는가? 우리가 살기 위해 속여 버린 그래서 거북이의 처지가 된 타인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윤리를 가져야 하는가? 아쉽게도 <소리도 없이>에서는 여기에 대해서는 충분히 말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홍의정 감독의 다음 영화에서는 이것에 관해 들을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스트리밍으로 인한 미디어 생태계의 수렴과 분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