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맨골드. <포드 V 페라리>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포드 V 페라리>를 무슨 이유로 만들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포드 V 페라리>가 좋은 영화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란 어려울 것이다. 슈퍼히어물에 대한 반감을 밝힌 바 있는 제임스 맨골드 감독의 직업정신에 관한 메타 영화로 보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접근일 것이다. 좋은 영화는 수많은 결에서 바라보는 것이 가능하고 <포드 V 페라리> 역시 그렇다. 이하의 내용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밝힌다.
미국에서 유일한 ‘르망24시’우승자인 캐롤 셸비(맷 데이먼 분)는 심장 문제로 인해 더 이상 레이스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자연스럽게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셈. 캐롤 셸비에게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 대량생산의 아이콘인 포드가 페라리와 같은 명품 차를 가지고 ‘르망24시’에서 우승하겠다는 욕망을 가지고 셸비에게 찾아온 것이다.
문제는 셸비가 더 이상 운전을 할 수 없다는 것.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셸비가 찾아간 것이 켄 마일스(크리스찬 베일 분)다. 누구보다도 차를 사랑하고 실력 있는 켄에게는 결점이 하나 있다. 바로 타협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 행사장에서 켄 때문에 얼굴을 붉힌 적이 있는 중역 레오 비브(조쉬 루카스 분)는 켄의 성격을 문제 삼아 ‘르망24시’출전을 저지시킨다. 당연히 결과는 포드의 참패.
참패의 이유를 묻는 회장에게 셸비는 자신에게 전권을 줄 것을 요구하고 이 덕분에 켄은 ‘르망24시’에 출전하게 된다. 하지만 이번에도 켄의 발목을 잡은 것은 비브다. 셸비와 켄의 노력으로 멋진 차를 만들어낸 포드는 1위, 2위, 3위 모두를 확정 지은 상황이다. 당연히 1등은 켄이다. 비브는 포드의 차 세 대가 동시에 들어온다면 좋을 것 같다고 회장을 설득하고 회장은 이를 받아들인다. 마지 못해 켄에게 이 사실을 전달한 셸비의 뜻을 켄은 차마 거절하지 못한다. 세 차가 동시에 들어왔지만 1등은 다른 동료의 몫으로 돌아간다. 동료의 차가 켄보다 늦게 출발했기 때문이다. 결국 켄은 1등을 하지 못한다. 차를 직접 운전하며 차 기능 향상을 위해 애쓰던 켄은 사고를 당해 죽게 된다. 켄과 각별한 사이였던 아들을 찾아갔다가 돌아오는 셸비의 뒷모습을 보고 나는 울음을 참기 어려웠다.
<포드 V 페라리>는 기본적으로 일을 대하는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지 묻는 영화다. 대량생산을 상징하는 포드와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겠다는 페라리가 지향하는 가치는 다를 수밖에 없다. 사실 어느 쪽이 옳다고 쉽사리 말할 수도 없다. 감독이 어느 쪽에 손을 들어 주고 있는지는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별다른 고민 없이 알 수 있다. 이 영화가 메타 영화로 기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맨골드 감독은 마틴 스콜세지와 같은 지점에서 슈퍼히어로물들이 양상되고 있는 현실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나에게 더 와 닿았던 부분은 인생을 바라보는 셸비의 태도다. 이 영화를 보면서 내가 내내 떠올렸던 영화는 <머니볼>이다. <머니볼>은 미키 맨틀의 “자신이 평생 해온 경기에 대해 우린 놀랄 만큼 무지하다”라는 말을 자막으로 보여주며 시작한다. 많은 사람이 그냥 산다.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지 않는다. <머니볼> 말미에 등장하는 홈런을 친 줄 모르고 무작정 1루로 달려가는 마이너리그 선수의 모습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는 홈런을 쳤어도 친 줄 모르고 병살을 치고도 병살을 친 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계에 이르렀을 때라도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바로 그 지점이 7,000 RPM일 것이다. 도입부와 마지막에 등장하는 셸비의 내레이션을 인용하면서 마친다.
“7,000 RPM. 어딘가엔 그런 지점이 있어. 모든 게 희미해지는 지점. 차는 무게를 잃고 그대로 사라지지. 남은 건 시공을 가로지르는 몸뿐. 7,000 RPM. 바로 거기서 만나는 거야. 그 순간은 질문 하나를 던지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넌 누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