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이것은 연극이 아닙니다.

페터 한트케.『관객모독』. 민음사(윤용호 역)

by 노창희

문학은 언어의 예술이다. 서사의 힘과 언어가 축조해 낸 정확한 문장이 어우러질 때 훌륭한 작품이 탄생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주지의 사실일 것이다. 서사의 대상은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다. SF 작품이라고 해도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세계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언어가 현실과 유리된 관념적인 체계라면? 이러한 의문을 제기한 것은 언어학자 소쉬르였고, 이 사고를 기반으로 인문학에서 구조주의 시대가 열린다. 소쉬르에 따르면 기의인 랑그와 기표인 파롤은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언어로 주어진 현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가능할까? 페터 한트케의 희곡『관객모독』은 이 질문을 던진다. 이 희곡은 관객들에게 이 작품의 정체성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여러분 앞에서 연기가 이루어질 뿐입니다. 이것은 언어극입니다(22쪽).”

역자인 윤용호는 작품해설 「「관객모독」의 생성에 관해」에서 한트케가 젊은 날에 형식주의와 구조주의에 심취해 있었다고 지적한다(74쪽). 구조주의에 대한 심취는『관객모독』과 같이 연극 자체를 언어극으로 보는 작품을 탄생시켰을 것이다. 『관객모독』은 끊임없이 관객인 여러분을 호명한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관객모독』이 자신이 기존에 경험해 왔던 연극적 형식과 다른 형식의 연극임을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여러분이 주제입니다. 여러분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 언어의 중심입니다(22쪽).” 이것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얘기하는 ‘낯설게 하는’ 효과를 창출한다. 『관객모독』은 다른 희곡과는 달리 서사가 중심이 아닌 관객을 끊임없이 호명하고 후반부에 가서는 ‘너’라는 호칭으로 관객을 모독함으로써 상투성을 극복하고자 하는 전위적인 형식적 실험을 시도한다.


한트케는 『관객모독』을 통해 서사를 통해 재현되는 시간성을 부정한다. “여기에서 시간은 공연되지 않습니다. 여기엔 오직 실제 시간만이 존재할 뿐입니다(41쪽).”『관객모독』에서 실제 시간이 존재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는 희곡이기 때문에 관객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는 것이 가능하고 장대한 시간을 편집하여 플롯화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연되는 그 순간이 실시간성의 서사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관객모독』에는 이렇게 실시간성으로 전달되는 배우들의 언어만이 “역사적인 순간(34쪽)”이 된다. 이와 같은 형식적 실험을 통해 『관객모독』은 자신이 연극이 아니라고 부정하기에 이른다. “이것은 연극이 아닙니다. 이것은 진실이 아니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모순을 깨닫습니다. 시간은 여기서 언어 연극에 사용됩니다(35쪽).”


여전히 많은 훌륭한 작품들이 서사의 힘에 기대고 재현이 중요한 문학적 기능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고전적인 형식에 대한 저항 역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안이해지기 쉬운 기존 관습에 대한 저항과 도전은 문학이라는 장르의 형식적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한트케는 서사의 관객이 될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러분은 주제입니다. 이 작품은 주제에 대한 머리말입니다. 여러분의 관습과 도덕에 관한 머리말입니다. 여러분의 행위에 대한 머리말입니다(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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