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수아즈 사강,『슬픔이여 안녕』(김남주 역, 파주: arte)
소설 『슬픔이여 안녕』(파주: arte)은 열여덟 대학생 프랑수아자 쿠아레를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으로 변모 시킨 작품이다. 『슬픔이여 안녕』은 17살 소녀 세실이 슬픔이라는 복합적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되는가를 다룬 성장소설이다. 일찍 부인과 사별한 레몽은 부유하고 매력적인 중년 남성이다. 그는 엘자라는 젊은 애인과 딸 세실과 함께 별장으로 휴가를 떠난다. 세실은 대학 입시에 실패한 충동적인 소녀이다. 세실은 그곳에서 만난 시릴이라는 남성과 사랑에 빠진다.
문제는 안이 별장을 찾아오면서부터 발생한다. 안은 세실 어머니의 친구로 교양있고 아름다운 중년 여성으로 묘사된다. 세실의 예상과 달리 안은 레몽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고, 그들은 충동적으로(아마도 그 결정은 레몽에게는 충동적이었을 것이고, 안에게는 계획적이었을 것이다) 결혼하기로 결정한다. 『슬픔이여 안녕』에서 질서로 상징되는 안을 세실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안은 나이가 비슷한 엘자와 시릴에게 연애하는 척 가장하여 레몽의 질투심을 유발 시키고자 한다. 세실의 계획은 성공을 거두고 레몽과 엘자가 키스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안은 레몽과 세실을 떠난다.
사강은 소설 뒤에 실려 있는 에세이 「슬픔이여 안녕」에서 “어떤 작가의 경우에는 어느 한 구절이나 한 단어가, 마치 어느 음색이 곡 전체 영향을 주듯이 작품 전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때가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내 경우에는 작품마다 그런 순간이 있다(194쪽).”고 얘기하면서 『슬픔이여 안녕』에서는 “안이 사랑하는 남자에게 자신이 한낱 정부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때가 바로 그렇다(194쪽).”고 말한다.
엘자는 레몽에게 작별을 고하고 떠나던 중 자동차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명확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이 죽음 앞에서 세실은 슬픔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학습하게 된다. 김남주가 옮긴이의 말 「‘사강다움’의 원전, 그 소설 속에서 ‘나’를 만나다!」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 소설의 제목이자 마지막 문장 “슬픔이여 안녕(186쪽).”에서 “‘안녕(Bonjour)’은 작별 인사가 아니라 만날 때 하는 인사다(217쪽).”즉, 이 소설은 안의 죽음을 겪으면서 세실이 슬픔이란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아가는 성장소설이다.
인상적인 한 작가의 삶이 독자들에게 낭만적으로 포장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작품이 창작 되는 과정이 낭만화 될 수는 없다. 『슬픔이여 안녕』은 대학생 프랑수아자 쿠아레가 슬픔이라는 감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깨닫고 작가 프랑수아즈 사강으로 되게끔 만든 작품이다. 슬픔이라는 감정이 무엇인지 규명해 내는 일. 그것은 문학이 지닌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다.
나를 줄곧 떠나지 않는 갑갑함과 아릿함, 이 낯선 감정에 나는 망설이다가
슬픔이라는 아름답고도 묵직한 이름을 붙인다. 이 감정이 어찌나 압도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내가 줄곧 슬픔을 괜찮은 것으로 여겨왔다는 사실이 부끄럽게까지 느껴진다. 슬픔, 그것은 전에는 모르던 감정이다. 권태와 후회,
그보다 더 드물게 가책을 경험한 적은 있다. 하지만 오늘 무엇인가가 비단 망처럼 보드랍고 미묘하게 나를 엎어 다른 사람들과 분리시킨다(1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