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 대한 정보와 관계의 밀도 사이의 불일치

#김금희 #체스의 모든 것 #오직 한 사람의 차지 #관계 #문학동네

by 노창희

김금희 소설에서 가끔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었다. 가령,「너무 한낮의 연애」에서 양희가 지향하는 가치 혹은 삶의 지향을 ‘있지 않음의 세계’라고 한다면 그걸 쉽게 받아 들이는 것이 타당할까? 라는 것. 양희가 필용에게 위로를 건내는 방식이 상투적이지 않다고 해서 그것이 미학적 훌륭함으로 손쉽게 이어질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이 남아 있었다. 다음으로는 『경애의 마음』에서 상수와 경애의 인연은 지나치게 운명적인 것은 아닐까라는 부분. 물론, 이것은 지나치게 팔짱을 끼고 봤을 때나 문제일 수 있는 부분이다. 서사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작가에게 달려 있는 것이니까. 쓰다 보니 길어 졌는데, 「체스의 모든 것」을 읽고 나서는 이러한 의문이 남지 않았다.


이 단편의 서사는 나가 좋아하는 선배, 국화를 좋아하는 선배, 선배를 좋아하지 않은 국화라는 구도를 가지고 있다. 이 구도 속에서 중요한 것은 과연 관계의 밀도를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하는 것과 관계로 인해 나라는 존재는 변할 수 있을까라는 두 가지 문제이다.


먼저 관계의 밀도에 관한 것. 이것은 단순히 연애 관계가 아니라 우정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텐데, 나는 이 소설이 얘기하는 바에 동의한다. 관계의 밀도는 관계가 지속된 시간이나 정보의 양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이성적인 감정과는 무관하게 ‘나’는 선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점에 큰 가치를 둔다. 하지만 선배와 결혼한 피비 케이츠를 만나고 나서 관계의 밀도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가 지속된 기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사랑에서 대상에 대한 정확한 독해란,
정보의 축적 따위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완수였다(27쪽).


하지만 여기서 나가 오해한 부분이 있다. 새로운 관계가 반드시 변화의 완수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 선배는 피비 케이츠와 이혼한다. 선배와 피비 케이츠의 결혼이 지속되었라도 선배의 변화는 지속될 수 있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믿는 쪽이다. 애초부터 불안한 정서를 지니고 있었던 선배의 문제는 본인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다. 나 역시 선배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이어갔다고 하더라도 원하는 관계의 변화를 이루어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변화가 완수된 듯 보여도 그것이 지속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울하게 곱씹었다(28쪽).


관계의 또다른 특성은 나와 그 사이만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것. 체스를 표면적인 이유로 내세우며 선배는 국화와 재회하고 그것을 계기로 나는 선배와의 어정쩡한 관계를 마무리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계기가 된다. 물론, 제삼자외에도 무수한 변수가 있을 수 있다.


나는 선배가 국화와 재회했을 때가 아니라
그 재회를 계속 이어가지 못했을 때 우리의 관계도 완전히 끝이 났다고 생각했다. 관계의 끝이란 그렇게 당사자 사이의 어떤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당사자들과 제삼자 사이에도 오는 것이었다(33쪽).


이 소설에서 표면에 놓여 있는 서사는 국화와 선배가 체스의 룰에 대해 다르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 놓여 있는 것은 관계에 대해 우리는 다르게 이해하고 있으며, 그것이 관계가 지속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라는 것이다. 그래서 설령 그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더라도 나와 그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관계 맺을 수 없다. 이 단편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이 작가가 이제는 잘 쓰는 작가에서 신뢰할 수 있는 작가로 나아갔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윤성희 문장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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