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마지막 이기성」, 『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
”이상한 사람을 만나고, 이상하지만 이상해서 끌리는데, 그게 꼭 연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로 인해 내가 달라지고야 마는 이야기(신형철 리뷰「심미적 연대의 원예학」, 270쪽).“ 라는 설명 보다 김금희의 소설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이 훌륭한 정리 앞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신형철의 문장에 대해서는 다시 쓰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가 쓴 것은 연애소설이 아니라 차라리 연대소설이다(269쪽).“ 나는 이 문장에 동의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렇게 써보고 싶다. 김금희가 쓴 ”연애소설들은 연애소설을 쓰려다가 실패해서 연대소설이 된다“라고.
집단 간 혐오가 심해지면서 같은 사안을 두고 과연 진실은 무엇인지를 놓고 따지는 일이 갈수록 잦아지고 있다. 이 소설의 서사에서 기능적으로 가장 중요한 대목은 과연 이기성과 유키코가 다른 행선지로 가게 되어 있는 열차 칸을 배정받은 것이 의도적인 것인지 아닌지의 여부이다. 실체적 진실을 따지게 되는 많은 일들이 그렇듯 이일 역시 도저히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난감하다. 조교가 앞의 열차가 만원이었기 때문에 뒷 칸으로 배정한 것이라는 주장 역시 만원의 기준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다. 교환학생으로 온 이기성과 재일 코리안인 유키코는 그 일을 계기로 연대한다.
투쟁이 지지부진해지자 유키코는 뜬금없이 배추를 심는다. 사실 나는 김금희 이런 식의 접근 방식에 동의하기 어려웠는데 이 소설을 읽는 도중에 그리고 다 읽고 나서 이 설정 자체에 대해 묘한 감동을 느끼고 말았다. 해결이 불가능한 사안, 특히 갈등적 사안에 대해서는 무작정 부딪칠 것이 아니라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는 관조의 대상을 배치하는 것은 사태의 해결에 대한 격렬한 감정의 파고를 다른 방향으로 유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신형철은 이를 칸트의 미적 판단과 연관시킨다.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언제나 타자의 기준을 동시에 성찰하는 일이고 이를 통해 ’이기주의의 극복‘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을 그가 했기 때문이다(271-272쪽).“ 가치 판단의 영역에 다른 관조의 대상을 개입시키는 것. 아는 이것이 김금희가 시간의 힘을 긍정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어쩌면 보다 더 중요할 실체적 진실에 대한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 남아 있다. 이기성은 왜 유키코에게 사랑의 감정을 철회해 버렸는가 하는 것이다. ”유키코와 가장 나쁜 경우로 헤어졌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그 나쁜 경우란 여전히 한 사람을 사랑하지만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누군가는 영원한 가해자로, 누군가는 영원한 피해자로 남는 구도였다(245쪽).“ 이기성은 자신 조차 자신이 왜 유키코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사라져 버렸는지 납득하지 못한다. 그리고 본인이 나쁜 사람으로 기억되기 싫은 것 자체가 이기성이 극복하기 어려운 이기성인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현재의 시점에서 지나간 2006년을 회상하는 이야기이고, 이기성은 배추밭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일본을 찾아 가지만 유키코를 만나지 못한다. 그의 깨달음은 진실은 결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유키코가 캡슐에 넣어 두었던 동전을 밭에서 꺼내 거기 있던 동전을 어찌할지를 두고 고민하던 그는 동전을 보고 ”마지막 진실들을 만져보는(263쪽)“ 기분을 느끼지만 ”그것을 정확히 알고 싶어 가까이 더 오래 가져다대면 희미하게 옅어지다 종국에사라지고 없었다(264쪽).“ 결국 시간이 흐르면 실체적 진실이라는 것은 찾기 더욱 어렵다는 사실. 하지만 진실을 규명할 수 없었던 그 시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음의 김금희의 문장을 읽고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자연스럽고 당연한 인간과 자연과 세계의 이동과 흐름에 대해 말하기에 주저될만큼 세상이 형편없이 납작해지고 있다는 우려를 지을 수가 없다.
하지만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한 달이 일 년이, 그렇게 반복되는 시작과 종결의
회로에 마음을 기탁해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때론 그렇게 가뭇없이 사라지는
시간의 특성이야말로 우리 삶의 특별한 위로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태도가 지닌 나태나 이기성에 대한 고려 없이 정말이지 아주
산뜻하게(작가노트「그래서 갱신되는 마지막」, 267쪽).
실패한 연애소설이 연대소설로 거듭나는 것. 실패한 연애를 되돌아보는 과정이 이기성을 다른 존재로 바꾸는 것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시간의 힘을 빌어 조심스럽게 애기하는 소설. 나는 김금희의 소설이 점점 더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