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에 대한 환대가 나에게 돌아오기까지

조해진 『단순한 진심』. 서울: 민음사.

by 노창희

조해진의『단순한 진심』은 “나는 암흑에서 왔다(7쪽).”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나는 “정문주였고 박에스더였으며 나나이기도(250쪽)”했던 나다. 나가 3가지 이름을 가지게 된 배경은 어린 시절 프랑스로 입양되었기 때문이다. 나나는 서영이 “프랑스로 입양된 한국계이면서 연극배우이자 극작가로 활동하는 나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12쪽)”를 찍고자 한국에 와 주었으면 한다는 요청을 받고 한국으로 오게 된다. 서영이 찍는 영화는 정해진 서사 없이 나나의 기원을 찾는 여정을 다룬다. 이 영화를 찍는 과정이 『단순한 진심』이라는 소설이 된다. 암흑에서 온 나나의 기원을 찾는 이야기.


나나는 자신이 철로에 버려졌다고 믿는다. 자신이 철로에 버려졌다는 기억은 나나가 자신의 기원을 부정하는 중요한 근거로 작용한다. 그 철로에서 자신을 구해준 것은 기관사였고, 그는 자신에게 문주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문주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문기둥’이라는 사전적인 의미일까? 아니면 ‘먼지’라는 뜻일까? 나나는 “먼지처럼 살아온 떠돌이에게는(62쪽)”먼지라는 뜻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나나는 자신을 잠시 돌봐 준 기관사에게 고마운 마음과 원망하는 마음을 동시에 갖고 있다. 자신에게 온전한 소속감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지만 자신을 다시 버려 입양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나는 기관사를 찾아 나서고 영화를 찍는 서영이 이를 돕는다.


나나는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 서영의 집에 머물면서 복희 식당의 주인과 교류하게 된다. 나나는 그녀의 이름을 모른 채 식당 이름으로 그녀를 속으로 호명한다. ‘복희’라고. 복희에게 뜻밖의 환대를 받게 된 나나는 자신을 잠시 돌봐주었던 기관사의 어머니가 해준 수수부꾸미라는 용어를 모른 채 그 맛과 외양에 대해 복희에게 설명해 주고 복희는 수수부꾸미를 나나에게 대접한다. 그 과정에서 나나는 복희가 가진 사진 속 아이를 보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이 복희임을 알게 된다. 기지촌에서 흑인과의 사이에서 애를 가진 백복희의 생모는 어린 나이에 목숨을 잃게 되고 추연희라는 여성이 백복희를 기르다가 혼혈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하던 백복희를 결국 벨기에로 입양을 보낸다. 나나가 복희로 호명했던 여성, 나나에게 수수부꾸미를 해준 여성은 추연희였던 것이다.

추연희가 뇌출혈로 쓰러지고 나나가 백복희를 한국으로 부르면서 나나와 백복희는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나나에게는 기관사가 백복희에게는 추연희가 자신들을 잠시라도 환대해 주고 소속감을 부여한 인물들인데, 이 둘은 그 존재에 대해 복잡한 마음을 지니며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 나나는 기관사의 정체를 찾는데 성공하지만 기관사 정우식은 이미 죽은 뒤였다. 추연희는 이제 죽음을 앞둔 상태고 결국 죽게 된다. 나나와 백복희는 그들을 환대해 준 이들을 결국에는 잃게 된 것이다. “얼굴의 일부가 아니라 생애의 접힌 모서리가 절박하게 닮은 사람들, 나(나나는, 괄호는 인용자)는 그렇게 생각했다(220쪽).”


나나는 정우식의 생모와 정우식의 딸 문경을 만나게 된다. 여기서 나나는 중요한 정보 두 가지를 알게 된다. 정우식이 나나를 발견한 장소는 철로가 아니라 대합실이었다는 것. 문주라는 이름의 뜻은 아마도 ‘무늬’의 무와 ‘우주’의 주를 결합하여 만들어졌을 것이라는 것. 이것이 공교로운 것은 나나의 뱃속에 있는 아이의 태명. 나나가 자신이 직접 작명한 아아이의 이름이 우주였던 것이다. 이로써 나나는 온전히 버려진 것이 아니며, 문주의 의미도 먼지가 아닌 무늬의 우주임이 밝혀지면서 과거는 나나를 문주로 변화시키는 빛을 던진다.


『단순한 진심』은 인간에 대한 환대가 단순한 진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설득하는 소설이다. 이 믿기 어려운 진심에 손을 들어주고 싶은 것은 조해진이 과거로부터 끌어 올리는 빛을 발견하는 과정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우연과 필연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이 과정에서 밑줄을 긋고 옮겨 적다가 끝내 포기하게 될 만큼 많은 수의 아름다운 문장을 만나게 되는 데 이는 조해진 소설을 펼쳐 들기 시작할 때부터 품었던 기대치를 만족시키고도 남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조해진의 소설을 신뢰하는 것은 시간에 대한 작가의 다음과 같은 인식 때문이다. “왜곡과 술수를 모르는 시간의 정직함이 지금 내게는 안도이자 위로였다(185쪽).:”시간은 정직하고 그 정직한 시간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는 힘은 타인의 환대가 진심임을 믿는 선의에서 비롯될 것이다. 타자의 환대가 진심임을 믿을 수 있을 때 그 환대는 나로 돌아와 나를 바꾼다. 그렇게 나나는 문주로 돌아온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여러분, 이것은 연극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