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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Mar 22. 2022

더 좋은 공동체와 미디어

[노창희의 미디어와 컬처] <한국대학신문>

역대급 초박빙 선거였다. 1위와 2위를 기록했던 두 후보는 각각 1600만 명이 넘는 표를 얻어 역대 대선에 참가한 후보 중에서도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선거에 진 후보는 당선자에게 패배를 인정하고 축하했고, 당선자는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후보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했다. 두 후보 간에는 축하와 위로가 오고 갔지만 치열했던 만큼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안겨줄 수밖에 없던 선거이기도 했다. 언론의 역할은 다시 한번 도마에 올랐다.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언론의 역할과 언론에 의한 혐오 조장, 언론과 정치적 양극화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말들이 오갈 것이다. 


언론을 포함한 미디어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미디어가 가진 기본적인 속성에 대해 유념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는 본질적으로 전체가 아닌 일부를 가공해서 보여줄 수밖에 없다. 인간의 본성이 본래 선하다고 주장하는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휴먼카인드』에서 인간이 선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를 언론이 인간의 안 좋은 모습을 일반화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한다. 이 주장에 대해 전적으로 찬성하기는 어렵지만 미디어가 가진 본질적인 한계를 보여주는 지적이라는 것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중요한 것은 선거 이후 미디어에 대해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다. 먼저 미디어를 언론으로 좁혀서 이해하는 태도를 지양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는 광의로 접근하면 대상 사이를 매개해 주는 역할로 해석되어 거의 모든 대상을 포함할 수 있을 만큼 폭넓은 적용이 가능한 단어다. 미디어를 언론으로 국한시켜 접근하는 것도 문제지만 모든 대상을 미디어로 상정하고 접근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길지 않은 지면에서 정확하게 대상을 특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여기서는 우리의 마음에 영향을 주는 콘텐츠로 미디어의 범위를 국한해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어떤 시대든 공동체의 마음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는 매체 형식이 있다. 소설은 근대를 대표하는 매체였다. 근대를 어디까지로 봐야 할지는 칼럼의 성격과 필자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고, 영상매체가 주도적인 매체가 되기 전까지를 소설의 시대라고 규정하는 것은 가능할 듯하다. 가라타니 고진은『근대문학의 종언』에서 근대에 소설이 공동체의 기반이 되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주장한다. 공동체가 공감할 수 있는 인식적인 그리고 도덕적인 가능성을 소설이 제공했다는 것이다. 근대에 소설은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의 모습을 체험하고 자신이 지향하는 공동체를 꿈꾸게 하는 동력을 마련해 준 장르였다. 고진이 얘기한 근대문학의 종언을 둘러싼 담론은 여전히 논쟁적인 지점이 있지만 소설이 과거에 발휘했던 것과 같은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에는 이견(異見)이 존재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지금 공동체의 마음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매체는 무엇일까? 필자는 기존의 방송과 OTT를 포함한 텔레비전이라고 생각한다. 라몬 로바토는 『넷플릭스 세계와의 비밀』에서 텔레비전이라는 용어의 뜻을 “멀리서 보다(tele-vision)”라고 소개하고 있다. 동영상 매체의 주도권이 레거시 미디어에서 OTT를 포함한 스트리밍 미디어로 넘어오고 있지만 OTT를 텔레비전의 범주에 포함한다면 1980년대 이후부터 향후 꽤 오랫동안 텔레비전이 공동체의 마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매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디어의 영향에 대해 얘기할 때 언론만을 대상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한 이유는 드라마를 포함해 다른 장르의 콘텐츠들도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다만 선거와 같은 민감한 사안에 영향을 직접적으로 미치지 않을 뿐 우리가 평소에 접하는 콘텐츠들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살아가야 할 공동체의 지향점을 형성하는 데 상당한 역할을 수행한다.


지인들의 추천으로 뒤늦게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나의 아저씨>에는 ‘후계’라는 가상의 공동체가 등장한다. 필자는 후계라는 공동체가 비현실적인 판타지에 가깝다고 느꼈지만 드라마에서 그려진 연대에 마음이 움직였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미디어는 사회의 현실을 냉혹하게 보여주기도 하고 사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해서 보여주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위로를 건네기도 한다.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 내야 하는 것이 미디어의 역할이겠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의도치 않게 실제를 담아내지 못하는 경우도 많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앞으로도 미디어를 통해 세계를 인식하고 타인과 소통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디어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미디어에 대해 무조건 회의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는 생산적이지 않다. 


<오징어 게임>의 수상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넷플릭스는 시대정신(zeitgeist)을 담은 콘텐츠의 중요성을 강조해왔고, <오징어 게임>이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콘텐츠라고 밝힌 바 있다. 넷플릭스가 시대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본인들이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콘텐츠를 제작하여 주도적인 매체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기 위함이다. 이와 같은 넷플릭스의 야심에 K-콘텐츠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명과 암이 존재하지만 그 이슈는 다음 기회에 다시 다루고자 한다. <오징어 게임>과 넷플릭스 그리고 시대정신을 언급한 이유는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서 시대정신을 확인하고 감수성을 함양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꺼내기 위해서다.


코로나로 인해 미디어가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높아졌다. 중요한 것은 미디어와 어떻게 잘 공존해 나갈 수 있느냐다. 더 좋은 공동체를 위해 우리가 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어떤 정보와 가치를 제공해야 비판의 대상이 아닌 공존의 대상으로 미디어가 인식될 수 있을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공동체의 구성원과 미디어가 어떻게 하면 좋은 관계를 맺어 나갈 수 있을까는 앞으로 더욱 중요한 질문이 될 것이다. 


출처 : 이 글은 같은 제목으로 2022년 3월 19일에 <한국대학신문>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25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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