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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Mar 16. 2022

한국형 서사의 힘, 유연성과 역동성

<아레나 옴므 플러스>

콘텐츠 제국 디즈니가 가지고 있는 콘텐츠 목록을 보면 주눅이 든다. 때로는 압도된다. 디즈니는 자신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IP를 활용해서 슈퍼히어로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새로운 영웅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마블 유니버스를 확장시키고 있다. 차이와 반복 속에서 새로운 서사를 구축해 나간다고도 할 수 있지만 때로 거부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굳이 마틴 스코세이지의 마블 영화는 시네마가 아니라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공식에 짜 맞추는 듯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디즈니로 글을 열기는 했지만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피로감은 21세기 넘어서면서 서서히 조성되어왔다. 콘텐츠는 투자에 있어 리스크가 매우 큰 분야다. 식상함을 무릅쓰고 다시 과거의 관습을 반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 새로운 것에는 이용자들이 거부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성공하는 콘텐츠는 대체로 기존의 관습을 조금씩 비트는 경우가 많다.      


한국형 호러나 좀비가 성공을 거둔 이유는 기존의 장르를 한국식으로 창의적으로 수용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기존에 관습화된 장르의 문법을 따르면서 그것을 한국식으로 번안해 내는데 탁월한 역량을 보여온 K-콘텐츠의 힘을 ‘유연성’이라는 용어로 표현해 볼까 한다.      


한국 콘텐츠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였다. 1990년대는 문화적 역동성이 넘치는 시기였다.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와 같은 기존 대중음악의 문법을 혁신하는 아티스트들이 등장했고, <기생충>으로 아카데미를 평정한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서 이제는 세계적인 거장이 된 이창동과 박찬욱도 1990년대에 데뷔했다. IMF로 미디어, 문화산업을 비롯한 전산업이 침체를 겪었지만 경기가 회복되면서 21세기 이후 드라마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한류 확산이 시작되었고, K-POP은 대중음악에서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2016년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은 K-콘텐츠 향방에 있어 변곡점으로 작용하게 된다. 영상 플랫폼으로 많은 글로벌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 넷플릭스를 통해 K-콘텐츠가 전세계 가입자와 조우하게 되면서 K-콘텐츠의 경쟁력이 입증되게 된다. <#살아있다>, <승리호>와 같은 영화들이 글로벌 이용률이 1위를 기록했다는 사실은 이제 회자 되지 않을 정도로 넷플릭스를 통해 유통된 K-콘텐츠들은 엄청난 영향력을 보여 주었다. 2021년은 대한민국 콘텐츠 역사에서 <오징어 게임>으로 기억되겠지만, <지옥>이나 <D.P.>와 같은 콘텐츠들이 보여 준 성과와 미학적 성취 역시 과소 평가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22년에 공개된 <지금 우리 학교는>도 이용률 1위를 기록했다. 2022년에도 K-콘텐츠의 약진은 계속될 것이다.      


‘시대정신(zeitgeist)’은 넷플릭스가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가치고 대한민국적 역동성은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콘텐츠가 생산되는 동력이 되고 있다. 앞서 90년대적 역동성을 강조한 바 있지만 대한민국은 기본적으로 경쟁이 치열한 사회다. 이에 따른 갖가지 부작용이 큰 것도 사실이지만 치열한 경쟁만큼 역동적인 사회라는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콘텐츠 역시 다른 지역에 비해 시대정신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또한, 이용자들은 콘텐츠의 가치에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콘텐츠 제작자들은 이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한다. 유연성과 역동성은 K-콘텐츠의 주요한 동력이다.     


한국형 서사가 힘을 갖추고 있고 그 힘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한국형 서사를 둘러싼 환경은 또 다른 변곡점을 맞이하였다.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사업자에 대한 제작비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IP 확보가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OTT 플랫폼 간 경쟁이 심화되고 이에 따라 제작비가 높아지면서 IP의 다각적인 활용이 콘텐츠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부각되고 있다. 2022년은 콘텐츠 경쟁력 제고와 더불어 IP 확보와 다각적인 활용 등 한국형 서사가 가진 힘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나가는 것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      


한국형 서사의 글로벌한 경쟁력은 충분히 입증되었고, 사회적 양극화와 같은 시대정신을 미학적으로 담아내는 역량도 갖췄다. 하지만 콘텐츠의 내용과 형식은 끊임없는 혁신이 필요하고 산업적 환경은 콘텐츠의 가치를 극대화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내몰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성취에 안주할 수 없는 이유는 여전히 너무도 많다. 


이 글은 3월 7일에 <아레나 옴므 플러스>에 기고한 글입니다.


https://www.smlounge.co.kr/arena/article/50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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