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희 칼럼] <아주경제>
‘오징어 게임’이 황동혁 감독의 연출상과 이정재 배우의 남우주연상을 포함하여 에미상 6관왕을 차지했다. 어느 정도는 예측되었던 결과이긴 했지만 현실이 되었을 때 느꼈던 놀라움은 각별했다. 에미상에서의 성과는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이뤘던 성취와는 다른 의미에서 특별하다. 두 시상식 모두 미국이라는 로컬시장을 기반으로 하지만 드라마의 경우 지역성이 영화보다 강하게 작동하는 장르이기 때문이다. OTT로 인해 드라마도 지역적 경계가 큰 의미가 없어졌다는 점을 고려한다고 해도 ‘오징어 게임’이 에미상에서 이룬 성과가 대단한 것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에서 처음 공개된 것이 2021년 9월 17일이다.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고, 그 사이에 국내 콘텐츠 시장에서 ‘오징어 게임’을 두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오갔다. ‘오징어 게임’이 콘텐츠 분야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에 환기한 것은 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rights, 이하 IP)의 중요성이다. ‘오징어 게임’의 제작비는 300억 수준으로 알려져 있으며, 정확하게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넷플릭스가 ‘오징어 게임’으로 획득한 수익은 1조 원 이상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오징어 게임’으로 발생한 수익을 넷플릭스가 독점하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어지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대안들도 논의되고 왔다. 지식재산권을 포괄적으로 양도하는 것을 금지하는 저작권 포괄적 양도 금지와 추가 보상 청구권 등이 IP 독점을 막을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어 왔다. 하지만 사업자 간 사적 계약에 법·제도적으로 대응하는 것에 대한 한계에 대한 지적과 함께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우려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IP 독점 이슈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와 협업한 제작자들은 넷플릭스를 투자처로 선호하고 있다. 제작비 전부에 일정 부분의 이윤까지 보장해 주는 넷플릭스의 제작 방식은 국내 콘텐츠 제작자들과 제작사에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넷플릭스에 의한 IP 독점은 국내 콘텐츠 제작 생태계가 앉고 있는 구조적인 모순으로 인해 배태된 측면이 없지 않다.
넷플릭스가 대한민국에 진출한 2016년 이후 국내 콘텐츠 시장에서 가장 큰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사업자는 넷플릭스였고, ‘오징어 게임’은 그 정점에 있는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넷플릭스와 국내 콘텐츠가 서로 주고받은 것을 정확히 정산하기란 불가능 하지만 서로에게 유익한 거래였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이 셈법은 콘텐츠 시장에 국한된 것이다. 플랫폼 시장 혹은 전체 국내 미디어 생태계를 포함해서 주고받은 것을 따져 본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다.
넷플릭스가 대한민국 콘텐츠 시장의 헤게모니를 주도하던 시기는 끝났다. 아니 끝나야 한다. 전자의 문장이 현실에 관한 인식을 묘사하는 문장이라면 다음 문장은 당위적인 바람에 가까운 것이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기 마련이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넷플릭스가 IP를 포함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계약을 맺어 왔던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볼 수 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향후 IP를 통해 수익을 다각화 해나가는 방식은 국내 콘텐츠 제작 투자에 있어 이정표가 될 것이다. 향후 넷플릭스가 국내에서 제작 투자한 작품을 온전히 통제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영향력은 앞으로도 강하게 작용할 것이며, 넷플릭스와의 협업을 원하는 콘텐츠 제작자들과 제작사들도 여전히 많을 것이다.
‘오징어 게임’은 국내 콘텐츠 제작 투자에 있어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니 변곡점이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내수 시장에서의 성공만으로 많은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태생적으로 불가능한 시장이다. 넷플릭스가 국내 콘텐츠 제작 시장의 위상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제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플랫폼이 국내 콘텐츠 시장의 투자 부담을 덜어 주고 국내 콘텐츠 제작자들의 위상을 높여 주는데 일조했다는 것만으로 넷플릭스가 주도하는 제작 관행을 받아들이기에는 풀어나가야 할 숙제가 너무도 많다.
OTT 플랫폼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가장 우려스러운 지점은 콘텐츠 수급 비용이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콘텐츠 시장의 제작비가 시장 규모에 비해 큰 폭으로 성장한 것은 국내 콘텐츠가 동아시아 시장 중심으로 경쟁력을 확보했던 2000년대 이후부터 나타났단 경향성이다. 이러한 경향은 넷플릭스 국내 진출과 OTT 플랫폼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더욱 심화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경쟁하고 있는 OTT 플랫폼들은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수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제는 이와 같은 투자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느냐와 플랫폼의 건강한 성장 나아가 대한민국 미디어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콘텐츠 제작 투자에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IP를 확대해서 판권과 광고 이외에도 다양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는 콘텐츠 사업자와 플랫폼 사업자를 포함해서 콘텐츠에 투자해야 하는 모든 사업자에 해당되는 얘기다. 국내 사업자가 IP를 확보하는 제작 관행을 정착시켜 나가야 하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서 여러 지면에서 반복해서 강조했던 것처럼 콘텐츠 제작에 투자하는 사업자에 대한 규제 완화와 세액공제와 같이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부여할 수 있는 정부의 노력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콘텐츠와 관련된 대한민국의 공신력 있는 평가 체계 마련이다. ‘부산국제영화제’와 같은 국제적인 명망을 가진 시상식과 행사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콘텐츠 평가 체계를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미국이라는 콘텐츠 강국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과 그 상징성으로 인해 국내 콘텐츠가 미국의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좋은 평가를 받게 될 경우 발생하는 직·간접적인 효과가 크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아카데미, 에미상 등에 도전하는 것은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위상이 높아진 만큼 대한민국에서도 국내 콘텐츠를 포함해서 글로벌 시장에서 유통되는 콘텐츠를 평가할 수 있는 행사를 확대하고 체계를 정비하는 일에도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오징어 게임’의 성취에 대해 상찬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오징어 게임’이 남긴 숙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대한민국 콘텐츠 시장은 이제 다른 방식의 질적 성장이 필요한 시기를 맞이했다.
출처: 이 글은 같은 제목으로 <아주경제>에 9월 28일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https://www.ajunews.com/view/202209260738100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