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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Nov 23. 2022

지친자, 그리고 기다리는 자

N CONENT(한국콘텐츠진흥원)

볼거리가 넘쳐난다. 유튜브,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쿠팡, 디즈니플러스, 왓챠와 같은 OTT 플랫폼 이외에도 네이버, 카카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의 포털과 SNS에서도 우리는 쉴 틈 없이 동영상을 접하며 산다. 때로는 보기 싫은 영상도 피할 도리가 없다는 이유로 시청하게 된다.


미완의 이용자 주도성


'이용자가 주도하는 미디어 생태계', 즉 이용자가 주도하는 것이 가능한 미디어 생태계가 만들어졌다. 몇 개의 방송 채널만 존재했던 아날로그 시대의 이용자는 선택권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수동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 이용자에게는 무한한 선택권이 주어져 있다.

오랜 기간 수용자의 이용행태를 연구해온 웹스터는 이제 미디어가 희소한 자원이 아니라 이용자의 관심이 희소한 자원이라고 얘기한다. 동영상을 제공하는 사업자들은 희소한 자원인 이용자의 관심을 획득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이용자들은 정말 현재의 미디어 환경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통제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을까? 필자는 소수의 이용자를 제외한 다수의 이용자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지금의 상황은 이용자가 주도할 수도 있지만, 이용자가 기만당할 수도 있는 미디어 환경이다. 테이셰이라는 『디커플링』에서 디지털 대전환이 진행 중인 산업 환경에서 소비자는 돈, 시간, 노력이라는 세 가지 기회비용을 감당하고 상품을 선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세 가지 다 이용자들이 포기하기 어려운 자원이다. 이용자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현명한 선택을 하기 어렵다기보다는, 선택 자체를 위해 포기할 것이 많아서 이용자 주도의 선택이 어려운 것이 현재의 미디어 환경이다.


챙겨보지만, 지쳐요


이용자가 온전히 주도하는 콘텐츠 골라보기는 어렵다는 것을 차치하고서도, 선택지가 많아진 미디어 환경을 당혹스럽게 받아들이는 이용자들도 있다. 보고 싶은 콘텐츠를 보기 위해 월정액 이용 요금을 내는 일을 낯설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미 가입해 있는 서비스 외에 다른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추가로 드는 비용을 감당해야 할 것이냐를 두고 고민을 거듭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OTT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콘텐츠를 보기 위해 서비스에 가입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이용자들도 여전히 많다.


특히 주변에 여러 가지 OTT 플랫폼을 동시에 이용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콘텐츠 소비에서 나만 소외된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를 '콘텐츠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만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며, 콘텐츠 소비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기간 동영상 소비는 여가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이러한 상황 속에서 동영상을 선택하는 것과 소비하는 것은 일상의 중요한 행위로 자리 잡았다.

한편에서는 콘텐츠 소비 중독으로 일상의 리듬이 교란되어 힘들다고 얘기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남들이 다 본 콘텐츠를 억지로 몰아 보는 것이 버겁다고 얘기한다. 콘텐츠가 많아서 지쳐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폭식에 따르는 갈증


필자는 코로나를 전후로 해서 나타나고 있는 콘텐츠 범람 현상을 '영상 폭식 시대'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4) OTT 플랫폼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업자들은 이용자들의 이탈을 막으면서 새로운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공격적인 콘텐츠 투자를 지속해 나가고 있다. 이용자들은 선택지가 넓어진 상황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접하고 싶어 한다. 특히, 내가 가입해 있는 플랫폼에 볼 게 없다고 호소하는 이용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수만 개의 콘텐츠를 볼 수 있는데 볼 게 없다는 게 말이 되냐고 묻는다면, 진짜 볼 게 없다기보다는 내가 보고 싶은 콘텐츠가 없다는 게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보고 싶은 콘텐츠가 다른 플랫폼에서 릴리즈되었을 때 허탈함을 호소하는 이용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OTT 시장의 성장에 따라 가장 주목받는 장르는 드라마다. 영화는 2시간 내외 밖에 이용자를 잡아둘 수 없지만, 드라마는 이용자를 5시간 혹은 10시간 이상 체류하게 할 수 있고 첫 시즌이 성공하게 되면 다음 시즌을 제작해서 이용자를 유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드라마 소비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복수의 플랫폼을 통해 드라마를 시청하는 이용자들은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OTT 환경의 보편화는 실시간성이 갖는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다. OTT는 언제, 어디서나 내가 원할 때 볼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OTT의 특성을 설명하는 단어가 바로 '최적화(optimization)'다. 문제는 넷플릭스와 같은 OTT 사업자가 이용자에게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할 때 이용자도 그렇게 체감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맞춤형 서비스에 대한 의문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웹스터는 데이터 기반 맞춤형 서비스가 사업자 관점에서 일종의 정치적 행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정치가 의미하는 것은 정치 행위가 아니라 사업자 관점에서 이용자가 봐줬으면 하는 콘텐츠를 임의로 추천할 우려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용자 입장에서 자신의 취향을 성찰적으로 되돌아보지 않으면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콘텐츠를 보면서 시간을 버릴 수 있는 것이 지금의 미디어 환경이기도 하다.


나를 위한 리터러시의 필요성


현재의 사회를 SNS가 주도하는 사회라고 보는 시각이 늘어나고 있다. '주도'까지는 아니더라도 SNS가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전설적인 명감독인 알렉스 퍼거슨은 SNS를 하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라고 했지만, 지금의 사회적 환경에서 SNS를 하지 않고 살기는 결단코 쉽지 않다. 문제는 SNS를 통해 내가 원하지 않는 메시지나 동영상을 접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동영상의 경우 순간적으로 감정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접하기를 원치 않는 동영상을 보게 되면 불쾌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는 단순히 SNS가 아니라 콘텐츠처럼 기능하기도 한다. 나와 직접 관련을 맺고 있지 않은 사람과도 교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원하지 않는 콘텐츠를 접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동영상을 볼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것이다.

콘텐츠에 대한 피로를 호소하는 이용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더라도 이용자들은 좋은 콘텐츠를 기다린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가 좋은 콘텐츠라는 것이다. 콘텐츠가 범람하고 있는 상황에서 꼭 필요한 것이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선별할 수 있는 '나를 위한 영상 리터러시'다.8) 나를 위한 미디어 환경은 결국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밖에 없다.


출처: 이 글은 같은 제목으로 <N CONTENT>, 26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지친 자, 그리고 기다리는 자 | N콘텐츠 vol.26 (kocc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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