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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Nov 17. 2024

미디어 연구자가 바라본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의 의미

<한국대학신문> [노창희의 미디어와 컬처]

2024년 124회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한강이었다. 의외였지만 납득할 만한 결과였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의 문학세계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for her intense poetic prose that confronts historical traumas and exposes the fragility of human life)”이라고 평가했다. 한강은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을 수상하는 등 꾸준한 문학적 성취를 이뤄왔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그 정점에 이르렀다.     


필자는 학부 때 문학을 전공했고, 20년이 훌쩍 넘는 한국문학의 팬이다. 이 얘기를 굳이 꺼내는 이유는 노벨문학상에 대한 일시적 환호가 조금 불편했기 때문이다.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11월 초에 이르자 필자의 예상대로 그 열기는 수그러들었다.     


한국문단을 둘러싼 환경은 밝지 않고, 이는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얘기했던 2000년대 초반부터 이어진 일이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큰 성공을 거뒀다고 해서 대한민국 영상 제작 생태계가 가지고 있는 고질적 문제들이 완전히 사라질 수 없었던 것처럼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해서 한국문단의 열악한 상황이 극적으로 반전될 수는 없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보유한 국가로서 격을 갖추기 위해서는 문학과 출판산업에 대한 지속적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미디어 연구자인 필자가 문단 걱정을 과하게 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니 여기까지만 하자.     


이 글을 통해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K-컬처가 가진 역량과 한계 그리고 한국문학과의 관계 설정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미디어·문화산업 각 분야에서 그 의미를 성찰해 볼 필요가 있는 ‘사건’이다. 오징어 게임이 영화 ‘기생충’이 거둔 아카데미의 성취에서 자유롭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K-POP, K-콘텐츠와 같은 대한민국 미디어·문화산업의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과 떼어 놓고 얘기할 수 없다. 그런데 이런 해석이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한다면 그에 반박할 증거를 내놓긴 어렵다. 또 문학이라는 떠나온 고향보다는 발 딛고 서 있는 미디어 쪽과 이해관계가 첨예해서 그렇게 얘기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어도 이 역시 할 말이 없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K-컬처가 수출에 미친 긍정적 영향과 대한민국의 위상에 미친 파급력을 고려해 봤을 때 K-컬처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긍정적으로 작용했으리라는 짐작은 무리한 판단은 아닌 듯하다. 그리고 K-컬처가 가진 영향력이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가정은 몇 가지 중요한 생각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지금은 K-컬처가 가진 상징자본을 활용해 변곡점을 맞이할 수 있는 K-컬처와 새로운 활력을 찾아야 하는 한국문단이 상호 시너지를 낼 방법을 고민할 시기다. 먼저 검토가 필요한 지점은 IMF와 21세기, 그리고 앞서 언급한 종언 담론의 등장 이후 계속해서 외연이 위축돼 온 문학이 콘텐츠산업·영상산업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지다. 물론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과 같이 최근 영화와 드라마로도 제작된 사례가 있으나, 웹툰과 비교하면 소설이 영상 서사로 제작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문학은 여전히 과거 본격문학 혹은 순수문학으로 불렸던 문단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고, 영상산업에서는 폭넓은 대중의 지지를 받고 영상으로도 만들기 용이한 웹툰을 원천 IP로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문학이 웹툰에 비해 대중성 측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웹툰 IP를 활용한 영상 콘텐츠 제작은 앞으로도 활발히 이뤄질 것이고, 대한민국 미디어 산업에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웹툰 이외의 대안적 원천 서사의 확장이 필요하다. 소설은 그 어느 장르보다 탄탄한 서사를 구축하고 있으며,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논외로 하더라도 꾸준히 좋은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많은 상을 받으며 문단에서 인정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했으면서도 대중과의 접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장강명의 경우 《댓글부대》《한국이 싫어서》가 영화화됐다. 또한 문학은 웹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IP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영상 제작 시장에서 소설, 웹소설 등 문학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물론 앞서 언급한 작품들 외에도 2024년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도 영화로 제작돼 개봉하는 등 소설이 영상 서사로 제작되는 경우가 꾸준히 나오고 있기는 하다. 영상 제작 시장에서 영상화될 수 있는 작품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발굴할 필요가 있다는 맥락에서 하는 말이다.     


문단에서도 영상화를 염두에 둔 창작이 지속 가능한 문학 생태계 구축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국내 문학 생태계가 문단 문학 위주로 구성되는 것을 비판할 수는 없다. 영상화를 의식해 작품을 창작하는 것도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학계에서도 K-컬처가 가진 상징자본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K-콘텐츠가 글로벌 시장에서 유통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환경에서 소설 기반의 탄탄한 원작 서사를 갖춘 영상 서사들의 성공 사례들이 축적돼 나간다면 대한민국 문학의 글로벌한 위상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문학 독서를 통한 문해력 증진의 가치도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좋은 콘텐츠가 나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력 있는 창작자를 발굴해 내는 것이다. 창작자의 역량에서 중요한 부분이 독서다. 좋은 문학을 많이 읽은 창작자가 우수한 제작 역량을 갖출 가능성이 높으며, 이와 같은 창작자들이 많이 나올 때 K-컬처도 좋은 인적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콘텐츠 창작 역량이 높은 국가다. 하지만 그에 비해 독서량은 많지 않다. 이는 독서량과 콘텐츠 품질 간 상관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일 수 있다. 하지만 독서를 통해 양질의 정보를 습득하고 다양한 서사를 접하는 것은 창작 역량 습득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이에 관해 관심이 필요하다.     


장르 문학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환기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경쟁력 있는 장르 문학이 부족하다. 장르 문학이 보다 활성화되고, 장르 문학이 원작인 영상 콘텐츠가 성공한다면 문단이나 대한민국 영상산업 모두 긍정적인 효과가 창출될 것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사건이다. 그 사건을 일회성 이벤트로 소비해서는 안 되며, 원천 서사가 중요한 영상산업 분야에서는 이 사건에서 어떤 신호를 읽어야 하는지 주의 깊게 살필 필요가 있다.     


출처: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70880

이 글은 같은 제목으로 <한국대학신문>에 2024년 11월 17일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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