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날수록 희소성이 떨어지는 관계에 대해

김금희 「규카쓰를 먹을래」

by 노창희

10대와 20대 초반의 우정에는 좋게 말하면 마법 같은 힘이 있다. 우리는 친구이므로 이 우정으로 모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실제로 할 수 있는 별로 없다. 만약 무언가 거창한 시도를 했다면 대개는 사고로 끝난다. 물론, 그 사고는 대단한 것이 아니므로 곧잘 잊힌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자 다른 개성을 지닌 존재이므로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는 쉽게 사랑에 빠지고 누군가는 연애 따위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아간다.


김금희의「규카쓰를 먹을래」(『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서울: 마음산책)는 희소한 친구들의 우정에 대해 다룬다. 희영, 소영, 한영은 이름 때문에 대학시절 ‘희소한’ 자매로 불린다. 그만큼 그들의 우정은 희소하다. 희영은 곧잘 사랑에 빠지곤 한다. “강냉이처럼 쉽게 바스라지고 어떤 말 어떤 진심에 대해 떠드는 순간(28쪽)” 쉽게 마음이 이끌리곤 하는 타입인 것이다. 소영은 그런 희영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도 이들의 우정은 지속 된다. 우리의 우정은 희소하니까.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친구들 사이의 관계는 예전 같지가 않다. 각자 관심사가 달라진다. 직장이 있는 사람과 직장이 없는 사람, 결혼을 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애가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관심사의 격차는 갈수록 커진다. 앞에서 열거한 차이 말고도 무수한 차이가 과거와는 다른 미묘한 관계의 균열을 발생시킨다. 그럴 때 우리는 느낀다. 맞다. 우리는 원래 이렇게 다른 사람이었지. 유년 시절에 믿었던 우정의 신화는 금이 간다. 추억팔이도 하루 이틀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만남은 뜸해진다.


희소한 자매 역시 대학을 졸업하자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된다. “희영이 여전히 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것과, 소영이 어느 영세한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것, 한영이 박사 논문을 쓰지 못한 채 한국어 강사로 여러 대학을 전전하며 일하고 있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도 없었지만 대화하다 보면 그런 각자의 처지가 끼어들면서 긴 침묵을 만들곤 했다(30쪽).” 친구들끼리 만나면 서로가 유지하던 패턴에 맞게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관성이 작동한다. 그 익숙함이 우정의 힘이겠지만 그 패턴을 유지하려고 애쓰다 보면 피로를 느끼기 십상이다. “패턴이라는 것은 관계의 피로를 만들어냈고 여기다 일종의 ‘사는 문제’가 겹치면서 셋은 전처럼 섞여 들지 못한다는 느낌이었다(29쪽).”


피로를 느끼던 희소한 자매는 서른을 맞이하여 관계의 회복도 도모할 겸 일본으로 여행을 간다. 하지만 여행이란 무엇인가? 어느 정도의 갈등은 이미 예정되어 있는 것이 여행이 아닌가. 방을 잡는 문제부터 의견이 맞지 않던 이들은 결국 각자 돌아다니다가 숙소로 돌아온다. 각자의 침대에 누운 세 사람은 채팅방에서 대화하고 규카쓰를 먹으러 가기로 합의한다. 그렇게 소설은 끝나고 우정은 지속 된다.


「규카쓰를 먹을래」는 “사람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마음도 그렇게 시간에 의해 변형된다는 것(30쪽)”을 깨닫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억지로 관계의 희소성을 유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변한 만큼 타인도 변해가고 그 과정에서 마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애써 외면할 필요도 없다. 우정의 마법이 풀려도 관계는 지속된다. 우리는 여전히 친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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