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잘 살겠습니다」, 『일의 기쁨과 슬픔』. 파주: 창비.
‘나’는 결혼을 앞두고 있다.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가 그렇듯 청첩장 돌리기에 여념이 없다.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결혼식 전에 청첩장을 돌리기 위해 약속을 잡는 것만큼 잡기 어려운 일정도 없다. 이렇게 정신없는 나에게 다소 부담스러운 존재인 빛나 언니가 자신에게는 왜 결혼 소식을 전하지 않았냐며 만나자고 연락을 해온다. 수지타산에 능한 스타일인 나는 매사 자기 처신이 엉성한 빛나 언니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빛나 언니는 입사 확정일자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라 부동산 사기를 당할 정도로 사회적 소양이 부족할 뿐 아니라 동기지만 세 살이나 어린 자신에게 커피를 얻어먹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도 모르는 ‘나’의 입장에서는 전형적인 민폐 캐릭터라 결혼 전에 단둘이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존재다. 동기 모임 때 시간이 맞지 않으면 보고 싶지 않았던 빛나 언니는 부득불 단둘이 보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둘은 점심을 먹게 된다. “이로써 나는 결혼식 사흘 전까지 청첩장 약속을 잡은 사람이 되었고, 하객 한명을 추가로 얻었으며, 청첩장 한 장과 점심시간 한시간, 그리고 밥값 만오천원가량을 소비하게 될 예정이었다(10쪽).”
빛나 언니가 나를 만나고자 한 의도는 분명했다. 자신도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였다. 사회적 소양이 부족한 빛나 언니는 결혼 요령을 나에게 묻고 “모든 프로세스와 다양한 옵션을 정리한 엑셀 파일(13쪽)”을 얻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반전이 일어난다. 빛나 언니가 나의 결혼식에 오지 않은 것이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나는 다시 빛나 언니의 연락을 받게 된다. 나의 결혼식 날짜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는 것. 선물을 주겠다고 선물을 골라보라는 빛나 언니의 말을 듣고 나는 자신과 빛나 언니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치를 매긴다. “언니랑 내 사이는 축의금 오만원 정도의 사이였다(23쪽).” 점심을 먹고 한참이 흐른 후 “키보드 밑에 깔려 있던 흰 봉투(26쪽)”를 발견한 순간 나는 분노를 느끼고 빛나 언니에게 정확한 계산법을 알려 주리라고 마음을 먹는다. 그 정확한 계산법은 다음과 같다. “25,000(축의금 대신 먹은 밥값)-13,000(내가 청첩장 주면서 산 밤값)=12,000(26쪽)”
나의 결혼 상대는 회사 동기인 구재였다. 구재가 나의 이 계획을 듣고는 꼭 그렇게까지 해야겠냐며 자신이 그냥 내줄 테니 그만하라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복잡한 심경에 사로잡힌다. 꾸준히 스펙을 쌓으며 노력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백오피스에 배치되었던 나는 열심히 일해서 원하는 부서로 옮긴다. 거기서 함께 근무했던 구재와는 연봉이 무려 천삼심만원이나 차이가 났다. 그런 구재가 너무도 손쉽게 오만원을 주겠다고 하니 화가 나지 않았을 수 없었던 것. “구재는 내가 뭔가를 잘못했구나, 그래서 쟤가 화가 났구나,라는 사실 이외에는 아무것도 못 알아듣겠다는 눈을 하고 나를 바라봤다. 결혼 준비하는 내내 지겹게 봐온 눈빛이었다(28쪽).” 빛나 언니에게 가르쳐 주고 싶은 나의 계산법은 다음과 같다.
“빛나 언니한테 가르쳐주려고 그러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어떤 원리로 돌아가는지. 오만원을 내야 오만원을 돌려받는 거고, 만이천원을 내면 만이천원짜리 축하를 받는 거라고. 아직도 모르나본데, 여기는 원래 그런 곳이라고 말이야. 에비동에 새우가 빼곡하게 들어 있는 건 가게 주인이 착해서가 아니라 특 에비동을 주문했기 때문인 거고, 특 에비동은 일반 에비동보다 사천원이 더 비싸다는 거. 월세가 싼 방에는 다 이유가 있고, 칠억짜리 아파트를 받았다면 칠억원어치의 김장, 설거지, 전 부치기, 그밖의 종종거림을 평생 갖다바쳐야 한다는 거. 디즈니 공주님 같은 찰랑찰랑 긴 머리로 대가 없는 호의를 받으면 사람들은 그만큼 맡겨놓은 거라도 있는 빚쟁이들처럼 호시탐탐 노리다가 뭐라도 트집 잡아 깎아내린다는 것. 그걸 빛나 언니한테 알려주려고 이러는 거라고, 나는(28쪽).”
나의 계획은 어김없이 실현된다. 빛나 언니는 과연 나의 계산법에서 깨달음을 얻었을까? 이번에도 빛나 언니는 나의 기대를 어김없이 빗나간다. 12,000원을 맞추기 위해 1,000원 짜리 카드를 사지 않을 수 없었던 내가 쓴 손편지에 감동을 받고 펑펑 운 것이었다. 나의 계산은 진심이 되어 빛나 언니에게 전달된 것이다. 내가 쓴 손편지는 급기야 빛나 언니의 프로필이 되기에 이른다. “나는 은은한 필터가 입혀진 내 글씨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분명 내가 쓴 것인데 사진으로 찍어놓은 것을 보니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십년 뒤에 우리 더욱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요. 나는 혼자 십년 뒤,라고 조용히 읊조렸다. 너무나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십년 뒤. 그때까지 언니가 회사에 있을 수 있을까. 그때까지 나는 회사에 있을 수 있을까(32쪽).” 나와 빛나 언니의 간극은 끝내 메워지지 않을 것 같다. 계산법에 익숙해지기가 불가능해 보이는 빛나 언니는 십년 후에 잘살고 있을 것인가? 계산이 능한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것에 대한 산식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