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류진,「일의 기쁨과 슬픔」, 『일의 기쁨과 슬픔』.
제4차 산업혁명, 데이터 기반 사회와 같은 용어들이 수도 없이 회자 되지만 일반 소비자 입장에서 이러한 용어들에 대해 체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페이스북이라면? 11번가라면? 금세 와 닿을 것이다. 플랫폼의 특징은 내가 물건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플랫폼을 만들기만 하면 물건을 팔고자 하는 사람과 물건을 사고자 하는 사람을 이어주고 수수료를 받아 비즈니스를 영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꼭 물건을 팔지 않아도 된다. 페이스북처럼 이용자와 이용자 간의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열어주고 광고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가능하다. 우동마켓이라는 플랫폼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데이빗의 목표가 우동마켓에 광고를 붙이는 것인 이유도 광고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이다.
데이빗의 골칫거리는 거북이알이라는 아이디를 쓰는 이용자가 지나치게 많은 물건을 염가에 우동마켓을 통해 파는 것이다. 이 회사에서는 대표인 데이빗이 수평적 기업문화를 구축해야 한다는 이유로 영어 이름을 만들어 서로 부르고 있는데, 한글 이름도 영어 이름도 안나인 나는 이 때문에 상시로 하대를 당하게 되어 불만이다. 데이빗은 안나에게 거북이알을 직접 만나보라고 지시한다. 거북이알에게 물건을 조금만 올리고 아이디도 바꿔 보라고 권해 보라는 지시를 받은 것. 안나가 보기에 거북이알이 과연 우동마켓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지만 대표인 데이빗의 지시가 있었으니 만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안나는 거북이알을 만난다.
알고 보니 거북이알은 대기업 유비카드사에 다니고 있었다. 그런 그가 왜 우동마켓을 통해 다량의 물건을 팔고 있는가? 유비카드사의 조운범 회장은 인스타그램 셀럽이다. 조운범 회장의 주요 콘텐츠 중 하나는 클래식과 관련된 정보였고, 유비카드사는 회장의 이런 고상한 취미에 걸맞게 클래식 공연을 기획하고 있었다. 거북이알이 그 담당자였던 것. 회장의 지시로 루보프 스미르노바(루바) 공연을 기획한 그는 다른 공연기획과 마찬가지로 다른 공연 기획처럼 루바 방한 공연을 공식적으로 홍보할 것을 지시한다. 이 일 때문에 거북이알은 월급을 돈이 아닌 포인트로 지급받게 된다. 회장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루바의 공연을 먼저 알리고 싶어했는데, 그걸 모르고 다른 공연처럼 공식적인 홍보방식으로 루바의 공연 소식을 알렸다는 이유로.
거북이알은 처음에는 좌절하지만 포인트로 정가보다 저렴하게 물건을 사서 우동마켓을 통해 물건을 팔아서 그 상황에 적응하려고 한다. “원래 내가 받았어야 하는 건 포인트가 돈인데… 사실 돈이 뭐 별건가요? 돈도 결국 이 세계, 우리가 살아가는 시스템의 포인트인 거잖아요(52쪽).” 플랫폼 덕택에 포인트를 받고도 포인트를 돈으로 바꾸어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조운범 회장 덕분에 안나는 루바의 공연을 보러 갈 수 있게 되었다. 안나도 클래식 매니아 였던 것. 인스타가 없었다면 안나는 루바의 공연을 보는 것이 가능했을 것인가? 아마도 어려웠을 것이다. 조운범 회장이 인스타에 루바의 공연을 유비카드사에서 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이 루바 내한 공연 기획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플랫폼 덕분에 월급을 포인트로 지급 받아야 하지만 플랫폼 덕분에 루바의 공연을 보러 갈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안나는 플랫폼의 수혜자다. 플랫폼 덕분에 월급도 받고 루바의 공연을 보러 갈 수도 있으니. 물론, 플랫폼 때문에 거북이알은 포인트로 월급을 받아야 하지만. 플랫폼 시대 일의 기쁨과 슬픔은 이런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