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서울: 민음사.
계나는 금융업체에 근무하는 20대 후반의 직장 경력 3년차 여성이다. 집안 사정은 넉넉하지 못하다. 대학을 졸업했지만 여전히 독방을 쓰지 못하는 처지다. 매일 2호선을 타고 출퇴근 할 때마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2호선이 지옥철 것은 계나의 잘못이거나 계나가 근무하는 회사 때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근본적으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는 사회체계의 문제다. 좋은 직장이라고 여기는 직장은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니 서울은 집값이 비싸다. 그러니 집을 사기 힘들다. 계나의 집처럼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집은 생활비를 보태는 계나에게 독방 하나 주기 힘들다.
『한국이 싫어서』는 장강명이라는 걸출한 작가가 던지는 묵직한 질문이다. 그 질문을 독자가 술술 읽히도록 만드는 재주는 가히 독보적이다. 계나는 한국을 떠나기 어려운 이유를 많이 가지고 있는 존재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경제적으로 어렵긴 하지만 화목해 보이는 가정에 살고 있다), 사랑하는 지명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나는 떠난다.『5년 만에 신혼여행』을 읽고 지명의 모델이 장강명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한국이 싫어서』와 『5년 만에 신혼여행』의 결말은 다르다. 어느 쪽이 헤피엔딩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 소설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해 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고,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애 대해 묻는다.
“밥을 먹는 동안 나는 행복도 돈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는 거야. 어떤 행복은 뭔가를 성취하는데서 오는 거야. 그러면 그걸 성취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서 사람을 오랫동안 조금 행복하게 만들어 줘. 그게 자산성 행복이야. 어떤 사람은 그런 행복 자산의 이자가 되게 높아. 지명이가 그런 애야. ‘내가 난관을 뚫고 기자가 되었다.’는 기억에서 매일 행복감이 조금씩 흘러나와. 그래서 늦게까지 일하고 몸이 녹초가 되어도 남들보다 잘 버틸 수 있는 거야(184-185쪽).”
2015년에 이 책을 처음 읽고 썼던 독후감을 다시 뒤져 보니 다음과 같이 적은 적이 있다. 어제 비교적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점심에 만난 야심가는 끊임없이 미래를 준비한다. 그는 그렇게 자산을 쌓는 데서 만족감을 얻는 사람이므로 내게도 계속 유무형의 자산을 축적하기를 권한다. 저녁에 만난 한 교수님은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한탄한다. 하지만 그 역시 현금흐름성 행복을 얻는 데는 실패한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 자신이 현금흐름성 행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이들과 다르다. 하지만 그 굴레에서 벗어나 올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
나 역시 현금흐름성 행복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별다른 경제적 어려움 없이 자랐지만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디디는 심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딱히 재테크 같은 것에 관심도 없다. 다만 의미 있는 무언가를 성취하고 싶은 욕구는 항상 존재한다. 그 욕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다만 하루하루를 보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현금흐름성 행복을 지금보다 더 추구할 필요는 있다고 느낀다.
내가 장강명이라는 작가를 신뢰하는 것은 한국이 싫다고 해서 한국을 떠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고 권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이 싫어서』만 읽은 독자라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표백』으로 시작하여 『산 자들』까지 장강명은 한국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나는 이것이 대한민국 사회를 보다 나은 사회로 변혁시켜야 한다는 장강명의 의지이자 작가로서의 윤리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