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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Nov 29. 2019

OTT, 이용자 그리고 생태계

미디어 생태계 대전환기에 이용자가 갖는 의미

개인적으로 OTT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한 것이 대략 5년 정도 된 것 같다. 내 고민의 출발점은 OTT가 아니라 방송을 규제한다는 관점에서 OTT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연구과제를 수행하면서 형성된 출발점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게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구나 하고 생각할 때가 많다. 최근 1년 정도 실제로 OTT를 이용하는 이용자의 관점에서 OTT를 봐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CEO인 헤이스팅스는 넷플릭스의 경쟁상대는 수면시간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고, 이 말이 여러 군데서 회자되고 있다. 물론, 좀 과한 측면이 없지 않긴 하지만 이 말이 시사하는 것은 OTT가 방송의 대체상품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국내나 해외의 통계를 보면 방송 시간 자체가 드라마틱하게 줄어들고 있지는 않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방송을 포함한 동영상 이용시간 자체가 늘었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부분은 이용자들이 동영상을 대하는 태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하는 부분이다. 넷플릭스 얘기할 때마다 나오는 용어인 빈지뷰잉이 어느정도 보편화되었는지 그것이 이용자의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와 같은 고민들 말이다. 사실 이런 고민은 부족해 보인다. 새로운 OTT 서비스가 출시되면 기존의 방송 서비스나 OTT 서비스를 어떻게 대체할 수 있을지를 중심으로 논의가 이어지는데 현실적으로 대체냐 보완이냐 여부는 현재 경험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귀납적인 개별 사례의 연구를 축적하고 이 토대 위에서 연역적 혹은 경험적인 연구를 통해 시장의 다이내믹스를 추론해 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판단일 수 있다. 개별적인 이용자들이 과거와는 얼마나 다르게 동영상을 이용하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보다 더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유료방송에 대한 대체제이쟈 보완제이냐 여부는 매우 중요한 이슈이긴 합지만 지금 그것을 설득력 있게 예측하고 분석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융합 환경이 보편화되면서 미디어 영역에서도 생태계라는 표현이 주목받고 있다. 생태계라는 용어가 주목받는 이유는 중 하나는 시장을 전반적으로 압도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주체가 존재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특정 사업자가 압도적인 점유율을 확보하는 것이 가능할 수는 있다. 하지만 기존의 방송 생태계가 법·제도적인 힘에 크게 좌우되는 반면, 그보다는 훨씬 느슨한 규제를 받는 OTT 사업자가 같이 있는 생태계는 완전히 다르다. 이제 미디어 생태계는 규제에 의해 구축되었던 산업영역이 서비스, 이용자, 조정자로서의 정부가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모두 함께 구축해 나가는 영역이 되었다. 


생태계가 이용자 중심으로 구축되어 가는 생태계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어떻게 법제도를 바꾸어 나가는 것이 합리적일지 정부가 사업자를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이용자에게 편리한 이용환경을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등을 보다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고민 없이 규제에 대해 수직이다 수평이다를 논하는 것은 논리적인 정합성이나 필요성을 떠나서 논의의 장 자체를 마련하기 어려울 수 있다.

OTT를 포함한 미디어 생태계는 이용자, 사업자, 정부가 이용자 중심으로 만들어 나가는 생태계 혹은 문화적 제도이다. 여기서 제도는 법·제도를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이다. 사업자 는 이용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정부는 정책의 가장 큰 목적인 이용자의 복지를 높이기 위해 이용자 중심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영국의 경우 방송통신을 한 법체계 테두리 안에서 보고 방송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융합 환경에 대응했다. 미국은 지상파와는 다른 별도의 법체계를 통해 유료방송인 MVPD를 규제하고 있다. 이는 이상적인 법제도의 형태가 존재한다기보다는 각각의 장단점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혁신적인 법체계 개편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지만 지금이 어떠한 상황인지 보다 심도 있게 이용자 입장에서 들여다 볼 때 현실적인 개선방안이 나올 수 있다.


서비스 혹은 기술중심적인 중심적인 결정론적인 사고를 벗어나 이용자 중심적으로 OTT 환경에 접근해야 한다. 2019년 11월 국내를 포함해서 미디어 분야에서 전세계의 이목을 끈 사건은 디즈니 플러스와 애플TV 플러스가 출시되었다는 뉴스일 것이다. 그런데 관련된 내용을 보면 당연한 것이긴 하지만 해당 서비스에서 제공하는 콘텐츠나 서비스 가격 중심으로만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용자들의 니즈가 무엇일지에 대한 분석이나 전망은 별로 없다. 데이터가 부족하면 그에 대한 상상력이라도 발휘가 되어야 할텐데 그런 분석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기술결정론적인 시각과 더불어 이용자 중심적인 시각이나 사회구성적의적 시각에서 지금 이용자들이 원하는 서비스가 무엇인가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얘기일 수 있다. 하지만 이용자 중심적인 접근은 정책이나 법·제도를 만들어 나가는데 있어서도 적용되는 얘기라고 판단된다. 앤드류 핀버그 같은 기술철학자들이 얘기하는 사회구성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Feenberg, 1999/2018), 이미 1970년대 레이먼드 윌리엄스(Williams, 1974/1996)가 시청자 중심으로 방송을 봐야 한다면서 매스라는 개념 자체를 비판한 한 바 있다. 이러한 구성주의적, 이용자 중심적 접근방식은 여전히 유효하고 그 중요성에 대한 관련 논의는 여전히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단순히 문화주의적 시각만은 아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인 테이셰이라(Teixeira, 2019/2019)가 쓴 디커플링이라는 책을 봐도 결국 기본은 이용자의 니즈를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용자에 대한 이해 없는 파괴적 혁신이라는 것은 성공하기 어렵다. 결국 상품을 잘 팔기 위해서건. 국민을 만족시키는 정책을 만들기 위해서건. 이용자 입장에서 내가 속지 않기 위해서건 이용자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2018년 베니스 영화제 수상작은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고, 2019년 베니스 영화제 수상작은 토드 필립스 감독이 만든 <조커>다. 감독이 누구냐 보다 누가 제작 했는지가 더 흥미롭다. <로마>를 제작한 회사는 넷플릭스고 <조커>를 만든 건 디씨다. 마블 또한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가치를 제작 시에 많이 고려한다. 오히려 너무 정치적 올바름에 너무 집착한다고 비판 받을 정도이다. 이러한 경향이 보여주는 것은 이용자들이 양질의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동영상 소비를 가치 있는 행위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이용자는 더 이상 수동적인 존재도 소파에 기대어 방송사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존재도 아니다. 사업자 입장에서나 정부 입장에서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어가고 있으며, 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용자를 이해해야 사업도 정책도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 가고 있다. 미디어 생태계의 중심은 이용자다. 


참고문헌


Feenberg, A. (1999). Questioning technology. 김병윤 (역) (2018).『기술의 의심한다: 기술에 대한 철학적 물음』. 서울: 당대.

Teixeira, T. S. (2019). Unlocking the customer value chain: How decoupling drives consumer disruption. 김인수 (역) (2019).『디커플링: 넷플릭스, 아마존, 에어비엔비…한순간에 시장을 점령한 신흥 기업들의 파괴 전략』. 서울: 인플루엔셜. 

Williams, R. (1974). Television: Technology and Cultural Form. 박효숙 (역) (1996).『텔레비전론』. 서울: 현대미학사. 


이미지 출처: Thibault Penin https://unsplash.com/photos/3HInbCmQ8ro


이 글은 2019년 11월 28일 개최되었던 (사)한국 OTT포럼 연속 세미나 <미디어의 질적 발전과 이용자 권익 증진을 위한 OTT의 역할과 위상> 세미나에서 토론한 내용을 중심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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