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와 ‘산 자’그 아슬아슬한 경계

장강명, 「공장 밖에서」, 『산 자들』. 서울: 민음사.

by 노창희

중국 자본의 투자를 받은 중견 자동차 회사가 망할 위기에 놓였다. 투자자는 한국을 떠났고 회사가 다시 일어설 방법은 구조조정 외에 없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 모두가 공생하는 방법을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장강명의 「공장 밖에서」에서는 구조조정 대상이 된 자들을 ‘산 자들’로, 구조조정 대상이 되지 않은 이들을 ‘죽은 자들’로 구분하여 이들이 벌이는 싸움을 다룬다. 이 싸움은 매우 복잡하다. 규모가 작지 않은 중견 규모 이상의 기업은 고용 문제 때문에 회사를 구조조정할 때 정부의 개입이 불가피하다. 한순간에 수천 명의 국민들이 실업자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국민들을 살리자면 그 기업이 망하는 것은 물론, 그 기업에 의존하고 있는 협력 업체들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여기에 관련된 당사자들은 순식간에 이전투구의 장으로 내몰리고 만다.


거시적으로 보면 경제 체제, 한국경제 체질의 문제일 수 있지만 보다 직접적으로는 국민들의 생존이 걸린 문제이고 정서적으로 보면 사회적 불안과 연관되어 있는 문제이다. 산 자들과 죽은 자들의 간극은 그리 크지 않다. 이것이 한국적 불안의 실체이며, 그 불안을 포착해 낸 것이 봉준호의 <기생충>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이 불안 속에서 누군가와 투쟁하며 살아야 한다. 이 참극의 대안을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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