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사람들의 함께 죽는 싸움

장강명, 「현수동 빵집 삼국지」, 『산 자들』. 서울: 민음사.

by 노창희

하은 모녀는 현수동에서 프랜차이즈 빵집을 운영하고 있다. 일찍 남편과 아버지를 여윈 모녀는 현수동에서 나름대로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운이 좋게도 현수동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빵 판매를 그만두자 하은은 앞으로 매상이 오를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하은의 어머니는 아마 새로운 빵집이 들어설 거라며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는다. 어머니의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된다.


대기업 임원이었던 아버지가 퇴직금으로 빵집을 차렸다고 해서 주영은 급하게 부모로부터 호출받는다. 이미 현수동에는 하은 모녀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빵집 뿐 아니라 50년 경력의 제빵사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가 아닌 빵집이 들어 서 있는 상황이었다. 평생 남편을 도왔던 순임은 일이 고됨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일을 하면서 흥겨워하는 모습이 좋아 열심히 남편을 돕는다. 하지만 가슴 한구석에는 과연 자신들이 이 빵집을 언제까지 운영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그녀는 자신들이 마분지로 만든 배를 타고 강을 건너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사히 강기슭에 이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122쪽).”


「현수동 빵집 삼국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선량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모두가 망할 수 있는 가격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세 빵집이 모두 식빵을 경쟁적으로 할인하는 바람에 함께 죽는 싸움이 되어 버렸다(126쪽).” 가격경쟁 뿐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헐뜯는 여론 경쟁도 벌여야 하는 처지다. 하은 모녀는 상대방 가게를 헐뜯고 나면 죄책감에 시달리게 된다. “모녀는 악인이 아니었으므로 그런 이야기를 한 뒤에는 죄책감에 시달렸다(128-129쪽).”


「현수동 빵집 삼국지」는 순임이 더이상 남편을 돕지 못했다고 항변하면서 마감된다. 물론 하은 모녀와 주영 가족의 경쟁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하지만 이 둘 가게만의 경쟁이 아니다. 역 부근에서 샌드위치를 파는 사람들도, 김밥을 파는 사람들도 모두 이들의 경쟁자다. 그야말로 무한 경쟁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경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이들의 노력에 달린 일일까. 주영은 하은을 찾아가 다음과 같이 항변한다.


“그게 정말 우리 손에 달린 일 맞아요? 전 잘 모르겠어요. 이건 저희가 얼마나 노력하느냐의 문제가 아닌 거 같아요. 저희 집이나 이 집이나 장사 잘 되면 어떻게 될 거 같으세요? 그러면 여기 장사 잘되는 곳이구나, 하고 옆에 빵집 또 생겨요. 틀림없어요. 저는 가게 망할지 안 망할지는 그냥 다 운인 거 같고요, 가게 문을 몇 시에 닫느냐, 그래서 하루에 몇 시간을 자느냐, 이건 저희가 정할 수 있는 문제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세요?(149쪽)”


이 무한경쟁 속에서 경쟁의 결과가 불확실하다면 서로가 서로의 삶을 지켜 주는 길을 찾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인 대안이 아닐까? 주영이 하은에게 하는 제안 속에는 작은 희망이 담겨 있지만 여러 가지 역학관계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자영업의 세계에서 주영의 제안이 순진한 이상주의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면 그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주영이 느낀 다음과 같은 감정은 곱씹어 생각해 볼 지점이 있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가게로 돌아오는 길에 주영은 낯선 흥분을 느꼈다. 학생, 공시생, 직원이던 그녀가 스스로의 판단으로 경쟁 가게를 찾아가 협상하고 담판을 지은 것이다. 부모님의 가게는 망하거나 간신히 연명하는 정도겠지만 그녀는 이 일을 계기로 조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나쁘지 않았다(150쪽).”


하은 모녀와 주영의 가족은 마분지로 만든 배로 무사히 강을 건너 올 수 있을 것인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분명한 것은 무한 경쟁 속에서 서로의 삶을 서로 지켜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연대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내몰리지 않을 수 있는 대안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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