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성이 발생시키는 가치와 노동의 가격

장강명, 「음악의 가격」, 『산 자들』. 서울: 민음사.

by 노창희

「음악의 가격」의 화자는 장강명 자신으로 추정된다. 화자인 나는 소설가인데 행사장에서 뮤지션 지푸라기 개를 만난다. 지푸라기 개라는 이름은 『도덕경』에서 따온 것이다. 『도덕경』에 “천지는 어질지 않아 만물을 짚으로 만든 개처럼 여긴다(302쪽).”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지푸라기 개는 그만큼 하찮은 물건이라는 뜻(302쪽)”이다. 이것이 시사하는 것은 1차적으로는 음악의 가치가 낮아졌다는 것이고, 노동의 본질 발생시키는 가치가 낮아졌다는 것이다.


화자인 나는 소설가이고 지푸라기 개는 뮤지션이다. 그런데 이들은 수익원으로 보면 소설가나 뮤지션이라고 보기 어렵다. 나는 강연료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많다. “수입 내역만 놓고 보면 나는 소설가가 아니다. 강연업자이고 2류 방송인이라고 불러야 한다(311쪽).” 지푸라기 개는 레슨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더 많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는 과거보다 책이 팔리지 않고, 디지털화로 인해 음악의 가치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음악시장은 짧은 시간에 비즈니스 메커니즘이 가장 급격한 변화를 겪은 산업이라고 할 수 있다. 20여년 전만 해도 한해에 수십만장 이상 팔리는 앨범이 심심치 않게 나왔다. 나만 해도 중고등학교 시절 테이프, CD를 사는데 용돈의 대부분을 썼다. 지금은 멜론을 통해 음악을 듣는다. 어지간한 음악은 멜론을 통해 다 들을 수 있다. 멜론에서도 들을 수 없으면 유튜브를 통해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한 달에 만원 정도만 들이면 된다. 하지만 과거만큼 음악이 나에게 가치 있게 느껴지는 것 같지는 않다.


“음악의 가격이 10년 사이에 100배, 어쩌면 175만 배 싸진 것은 받아들이겠습니다. 상품의 가격은 판매자의 노동이 아니라 구매자의 주관적 효용과 공급량, 보완재와 대체재의 가격에 달려 있다고 하니까요. 저는 다른 게 이해가 안 갑니다. 음악이 그렇게 싸져서 모든 사람이 거의 공짜로 음악을 즐기게 됐는데 사람들이 음악으로부터 얻는 효용이 얼마나 늘어났나요?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그 10년 사이에 175만 배나 100배, 아니 열 배라도 더 행복해졌나요? 오히려 반대 아닌가요? 사람들은 이제 음악을 공기처럼, 심지어 어떤 때는 공해처럼 받아들입니다. 사람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캐럴이 듣기 싫어 괴롭다고 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잔잔한 음악을 앨리베이터 뮤직이라며 조롱합니다. 음악은 이제 침묵보다도 더 값싼 것이 되었습니다(326-327쪽).”


지푸라기 개의 위와 같은 항변이 과연 음악의 값이 싸져서 발생한 현상일까는 따져봐야겠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크게 공감이 가는 말이다. 문제는 미래에는 음악뿐 아니라 거의 전 영역에서 이런 현상이 발생할 것이라는 점이다. 기술은 고도화된다. 굳이 사람이 아니더라도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가장 큰 부담인 인력을 감축할 수 있다.


재미있는 역설도 발생한다. 콘텐츠를 흔하게 접할 수 있다 보니 이용자들은 콘텐츠 자체가 아니라 콘텐츠를 생산한 생산자를 직접 보기를 원한다. “사람들은 콘텐츠가 아니라 아우라를 원한다(314쪽).” 강연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화자인 나처럼 강연이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큰 작가는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고 더 큰 문제는 강연으로나마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 프리랜서는 소수라는 것이다.


지푸라기 개가 가르치는 재희는 음악을 하고 싶어한다. 지푸라기 개는 충고한다. 음악을 하면 돈을 못 버니까 다른 일을 하라고. 재희는 항변한다. 무엇을 해도 돈을 벌 수 없으니까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것이라고. 재희의 판단이 맞을까? 분명한 것은 재희의 말에 반박할 논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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