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해 질 수 없는 삶에 관하여

장강명 『표백』. 서울: 한겨레신문사.

by 노창희

젊은 세대의 추락하는 생의 감각을 재현 혹은 묘사하는 일은 당대의 소설가들에게나 평론가들에서 가장 많이 다뤄지는 테마 중 하나이다. 장강명의『표백』도 이러한 층위에서 읽힐 수 있는 작품이다. 주목해 보아야 할 부분은 표백에서 다루고 있는 계급의식이다. 표백의 주요한 인물들인 A대학의 학생들 혹은 그들이 졸업 후 가지게 되는 사회적 지위는 결코 낮지 않다. 오히려 평균치를 훨씬 상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인 화자는 7급 공무원이며, 세연을 제외하면 주인공 다음의 비중을 차지하는 소크라테스 휘영은 유력지가 아닌 시사 잡지의 기자이지만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병권 또한 회계사 시험을 합격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 사회에서 ‘회계사’라는 자격증이 지닌 상징자본을 고려한다면 그 자체로 중간 이상의 계급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 세대에서 발견되는 허무 혹은 무력감이며, 이들이 이렇다면 훨씬 더 다수의 진짜 ‘루저’들의 삶에 관해 가지고 있는 의식은 어떠하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표백’된 의식을 가진 세대들 중 생존확률이 높은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끊임없이 방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표백을 읽고 던져야 할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다. 왜 살아남은 자도 행복할 수 없는가?


한국사회는 욕망이 미끄러질 수밖에 없는 상징계다. 주인공의 경우를 보자. 주인공은 목표대로 7급 공무원이 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공무원이 되기 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퇴근 이후 여가시간을 확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심지어 주말에도 출근해야 하는 사태에 처한다. 7급 공무원이라는 기표를 획득했으나 바로 미끄러지고 만다. 가정법을 써보자. 만약 7급 공무원이 되어 계획했던 대로 여가시간에 밴드를 하는 것에 성공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에 충분히 만족하기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공무원이라는 갖는 사회적 위치를 고려할 때 조직 내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급 공무원은 사무관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사무관은 국·과장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국·과장은 실장과 차관, 장관 눈치를 살펴야 하고, 장관은 청와대와 여론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데, 여론은 공무원들이 에어컨 바람 쐬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니 냉방 관련 지침을 바꾸는 일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214쪽).”


대한민국의 공무원 세계는 벗어날 수 없는 공리계다.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사닥다리에 맨 위쪽에 위치해도 국민들의 눈치는 봐야 한다. 그 국민들은? 공무원이 되기를 선망한다. 하지만 공무원이 되면 궁극적으로 다시 국민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세연은 이런 대한민국의 메커니즘을 아주 어린 시절부터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사회에 오래 체류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며 영웅적인 죽음으로써 자신의 존재증명을 하고자 한다. 문제는 그녀 혼자 죽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세연의 죽음은 단순히 이 세상이 싫다는 것을 넘어서는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즉, 한국사회라는 상징계에서는 유한자의 자격으로는 영웅이 되기 어렵다는 것. 그리하여 죽음을 통해 영웅이 되고 추종자를 만들어 영웅되고자 한다는 것.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것은 세연 역시 인정 욕망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즉, 얼핏 쿨해 보이는 세연의 행동 역시 사회적 사닥다리의 높은 곳으로 올라가 경제적 자본과 상징 자본을 획득해 보고자 하는 다른 친구들의 욕망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자는 공리계의 악순환을 끊지 못해서 불행하고 죽은 자 역시 인정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죽어서도 불행하다. 이러한 지옥의 공리계 속에서 『표백』의 등장인물들은 너무 일찍 늙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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