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스펙트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우주여행을 떠났다가 지구와 유사한 행성에 난파한 희진은 무리인들을 만난다. 처음에 그들 중 일부가 희진에게 위해를 가하려 하지만 무리인 중 루이라는 개체가 희진을 보호해 줌으로써 희진은 무리인들 사이에서 10년 정도 같이 살아가게 된다. 무리인들이 특이한 것은 생명이 무척 짧은데 한 명이 죽으면 다른 무리인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루이는 10년 사이 5명의 루이를 만나게 된다. 루이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림을 그리는 일인데, 루이와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한 상태인 희진은 루이들이 그림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그림을 희진이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구로 돌아온 희진은 자신이 최초로 외계인과 조우했음을 주장하지만 끝내 증거를 내놓지 않음으로써 지구로 돌아와서 허언증 환자 취급을 받는다. 화자인 희진의 손주인 나는 희진이 무리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희진이 무리인들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지구로 돌아온 희진은 여생을 루이가 남긴 색채 언어의 해석을 위해서만 집중한다. 그리고 루이가 남긴 다음의 문장에 흡족해 한다. “그는 놀랍고 아름다운 생물이다(96쪽).”
외부에 대한 호기심은 때로 침범이나 폭력이 될 수 있다. “우주에 지성 생명체들이 없던 것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지구인들을 원하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61쪽).” 희진은 천적으로부터 위협받던 무리인들을 위해 침묵하는 편을 택한다. 「스펙트럼」은 온전한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을 말해주지만 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연대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희진과 루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