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초엽,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안나는 딥프리징을 연구하는 과학자였다. 딥프리징 기술은 인체 냉동 수면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줄 것으로 기대되던 기술이었다. 딥프리징 기술은 우주 공간을 여행하는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을 동면에 취하게 하는데 활용되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웜홀 통로의 발견으로 딥프리징 기술은 과거만큼 주목받지 못하게 된다.
안나의 다른 가족들은 이미 슬렌포니아라는 행성으로 떠나서 안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나는 연구를 마치면 슬렌포니아로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웜홀 통로의 발견은 딥프리징 기술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니었다. 웜홀 통로의 발견으로 슬렌포니아 이주의 경제성이 떨어졌다고 판단한 연방정부는 슬렌포니아로 운행하는 교통편을 끊어 버린다. 안나는 가족들로부터 고립되고 만다.
안나는 언제 슬렌포니아로 떠날지 모르는 정거장에서 자신의 우주선을 통해 슬렌포니아로 갈것으로 기다리며 100년을 넘게 동결과 해동을 반복하게 된다. 정거장을 운영하던 본사에서는 정거장을 폐기하지 않아 연방정부에 벌금을 내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한 남자를 보낸다. 하지만 남자는 안나를 설득하여 지구로 돌아오게 하는 것에 실패하고 안나는 자신의 작은 우주선으로 슬렌포니아를 향해 출발한다.
기술의 발달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 믿었지만 안나에게 그것은 허망한 환상이었다. 자신을 설득해 지구로 귀환하도록 설득할 것을 목적으로 온 남자에게 안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완벽해 보이는 딥프리징조차 실제로는 완벽한 게 아니었어. 나조차도 직접 겪어보기 전에는 몰랐지. 우리는 심지어, 아직 빛의 속도에도 도달하지 못했네(180-181쪽).” 기술의 발달로 더욱 넓은 우주로 항해하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안나는 그 과정에서 가족을 잃었다. “우리는 점점 더 우주에 존재하는 외로움의 총합을 늘려 갈 뿐인 게 아닌가(182쪽).”
위와 같은 안나의 회한 섞인 한탄은 반드시 우주와 관련된 기술에만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발달이 인간의 외로움을 줄여 주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기술의 발달은 우리의 예상보다 빠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에는 한계에 도달하고 만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는 성공한다는 기약 없이 슬펜포니아로 떠난 안나의 운명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그녀가 언젠가 정말로 슬렌포이나에 도착(188쪽)”하기를 기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