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된 기억의 윤리, 신과 문학, 뜨거움과 차가움

개인적인 올해의 소설 베스트

by 노창희

한 해가 이렇게 저물어 간다. 작년부터 연말에 궁금해지는 것 중 하나가 소설가 뽑은 올해의 소설이다. 교보문고 팟캐스트 낭만서점에서는 소설가 50인으로부터 2019년에 출간된 소설 중 올해의 소설을 추천받아 순위를 발표한다. 나는 팟캐스트를 들었지만 아래의 순위는 권남영(2019. 12. 6. 소설가들이 뽑았다… 올 최고의 소설은 황정은 ‘디디의 우산’.『국민일보』)의 기사와 교보문고의 링크(http://www.kyobobook.co.kr/prom/2019/book/191204_writer50.jsp)를 참조한 것이다.


공동 6위: 9번의 일(김혜진), 빛의 과거(은희경), 설이(심윤경), 숨(테드 창)

공동 5위: 가재가 노래하는 곳(델리아 오언스), 단순한 진심(조해진), 밀크맨(애나 번스), 오직 한사람의 차지(김금희), 작은마음동호회(윤이형)

공동 4위: 무엇이든 가능하다(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항구의 사랑(김세희)

공동 3위: 레몬(권여선), 소년이로(편혜영)

공동 2위: 대도시의 사랑법(박상영),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김초엽)

1위: 디디의 우산(황정은)


읽은 책도 있고 읽지 않는 책도 있는데, 위에 있는 책을 다 읽었다고 하더라도 내 개인적인 순위가 바뀌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만큼 내가 강력하게 편애하는 작가의 편애하는 작품들이다. 순위 같은 것을 매기고 싶지는 않고 다음의 3편이 내 개인적인 베스트다. 다만, 『디디의 우산』이 소설가들이 뽑은 올해의 소설 1위라는 것에는 크게 공감한다. 순서는 작가의 등단 순이고, 내가 뽑은 올해의 소설 베스트3은 다음과 같다.


은희경 『빛의 과거』, 편집된 기억의 윤리

인간은 불완전한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불완전한 기억 때문에 발생하는 오해와 갈등이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김영민이 최근 발표한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의 제목을 빌려 말하면 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기억이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은희경의 자전적인 경험이 녹아 있는 이 작품은 은희경이 언젠가는 써야만 했을 소설이었을 것이다. 40년의 세월을 돌아 기억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이 작품이 내미는 화해의 제스처가 서툰 봉합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 작품이 지닌 미학적 완성도 때문일 것이다.


권여선 『레몬』, 신과 문학

지독한 소설이다. 인간이 자신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소설 내내 집요하게 묻는다. 그 물음이 물음으로 그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애초에 아무도 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이해할 수 없는 물음이 주변인의 죽음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면 더욱더. 단 한 번도 그 단어가 등장하지 않지만 세월호를 강하게 환기시키는 작품이다. 신에게 물어도 답이 없는 질문은 대체 어떠한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는가? 결국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문학의 자리라고 권여선은 얘기하는 것 같다.


황정은 『디디의 우산』, 뜨거움과 차가움

황정은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뜨거운 작가임과 동시에 가장 차가운 작가이다. 황정은은 가장 뜨거운 문제를 소설로 다룬다. 그러면 그는 왜 차가운가? 가장 뜨거운 문제를 가장 차가운 방식으로 벼려낸다. 황정은의 소설은 갈수록 더 서늘해지는 것 같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는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이 겪어야 했던 홍역을 구조의 차원이 아닌 개인의 차원에서 다룬다. 그런데 그 접근방식은 역설적으로 본질적인 구조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게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기술이 발달할수록 늘어가는 외로움의 총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