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할로서의 존재가 아닌 나 그 자체로서의 삶

김초엽, 「관내분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by 노창희

「관내분실」이 던지는 질문은 두 가지이다. 육체가 지상에서 존재하지 않더라도 영혼이라는 것이 데이터라는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생전에 이해받지 못했던 혹은 이해하기 싫었던 삶을 사후에라도 이해하는 것은 그 삶에 어떠한 빛을 던질 수 있을 것인가? 두 가지 질문은 연결되어 있는데 전자가 기술적으로 가능해지면 사후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보다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임신을 한 지민은 엄마인 은하의 마인드를 찾으러 도서관에 간다. 「관내분실」이 가상의 미래로 설정해 놓은 그 시기에는 사후에 데이터 형태로 마인드 업로딩을 하면 사자의 삶과 관련된 데이터가 도서관에 보관될 수 있도록 기술이 진화되어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도서관 담당자는 난감해하며 은하의 데이터가 관내분실 상태라고 전한다. 관내분실 상태란 유족 누군가의 부탁으로 마인드를 찾을 수 있는 인덱스를 소멸시켜 의도적으로 마인드를 분실시킨 상태를 의미한다. 지민에게 가족은 동생인 유민과 아버지인 현욱이 있다. 지민의 가족은 죽은 은하를 포함하여 모두 사이가 좋지 않았다.


도서관에서 디자인 일을 하던 은하는 종이책 산업이 거의 사양화되어 가는 시기에 지민을 임신하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일을 잃게 된다. 그 이후 극심한 우울증에 빠진 은하는 딸인 지민에게 집착하고 현욱은 그 상태를 방치한다. 동생 유민은 가족을 가장 먼저 등지고, 지민에게 집착하던 지민은 병원으로 가게 된다.


임신에 확신이 없던 상태에서 임신을 하게 된 지민은 한동안 궁금해하지 않던 은하의 안부가 궁금해졌던 것이다. 그것이 영혼이 아닌 데이터의 형태로 남아 있는 은하의 흔적에 불과하더라도. 도서관 직원은 인덱스를 찾을 수 있는 유품을 가져오면 인덱스 작업을 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다고 지민에게 알려주고 지민은 현욱의 집에 가서 그제서야 은하가 자신을 낳기 전에 출판사에서 표지 디자인을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은하가 디자인한 책으로 지민은 은하의 마인드를 찾아 이제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얘기한다.


지민이 발견한 것은 은하라는 개인적인 존재와 그 개인적인 존재는 엄마라는 용도로 규정되어서는 안되는 개별적인 존재가 갖는 삶의 가치다. “스무 살의 엄마, 세계 한가운데에 있었을 엄마, 이야기의 화자이자 주인공이었을 엄마. 인덱스를 가진 엄마. 쏟아지는 조명 속에서 춤을 추고, 선과 선 사이에 존재하는, 이름과 목소리와 형상을 가진 엄마(2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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