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를 추구하는 인간이 의존하는 감정이 갖는 물성

김초엽, 「감정의 물성」,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by 노창희

불안이나 우울과 같은 감정은 많은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감정적 상태이다. 이 감정의 양상들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 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감정의 여러 가지 양태들은 그 자체로 의미를 지닌다. 다만 그것이 지나쳐 일상생활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주기에 이르면 치료가 필요해진다.


「감정의 물성」은 긍정적인 감정뿐 아니라 부정적인 감정까지 인위적으로 느껴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모셔널 솔리드에서는 감정의 물성이라는 돌멩이를 판매한다. 그 돌멩이는 이용자의 정서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긍정적인 정서에 영향을 주는 돌멩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포체’, ‘우울체’와 같이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감정의 영역에 가깝다고 느끼는 정서에 영향을 주는 돌멩이도 판매한다는 것이 감정의 물성에 대해 팔짱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만든다.

감정의 물성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정하에게 회사 후배 유진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냥 실재하는 물건 자체가 중요한 거죠. 시선을 돌려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물성을 감각할 수 있다는 게 의외로 매력적인 셀링 포인트거든요(206쪽).”유진의 말처럼 인간들은 감정에도 물성을 느끼고 싶은 욕구를 지니고 있는 것일까?

오래된 연인 보현과 결혼 문제를 두고 갈등을 겪고 있는 정하는 가뜩이나 상태가 좋지 않은 보현이 ‘우울체’라는 돌멩이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결혼을 원하는 가족과 대립하고 있는 보현은 우울한 감정을 ‘우울체’를 통해 극복하고자 한다. 인간이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라고 믿는 정하는 이러한 보현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가 소비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오직 감정 그 자체였던가?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가 아닌가? 의미가 배제된 감정만을 소비하는 것은 인간을 단순히 물질에 속박된 동물로 전락시키는 일이 아닐까?(214쪽)”

결국 감정의 물성에는 마약 성분이 들어 있음이 밝혀진다. 하지만 정하는 보현을 논리적으로 위로 하는데 실패한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고민한다. “보현을 무슨 말로 위로해야 했을까? 나는 순간 보현을 위로할 수 있는 어떤 언어도 나에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언가 중요한 것이 가슴속에서 빠져나가버린 듯 싸늘했고, 나는 그게 생각이나 관념이 아닌 실재하는 감각임을 알았다(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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