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지성주의와 비딱하고 비스듬한 완고함

서보 머그더. 『도어』. 파주: 프시케의 숲.

by 노창희

『도어』는 양차 대전을 겪으며 인생의 산전수전을 고루 경험하고 지성주의를 배격하고 종교도 혐오하는 에메란츠의 이야기다. 에메란츠는 글을 쓰는 지성을 믿는 나의 맞은 편에 있는 인물이다. 『도어』가 흥미로운 것은 이 두 여성이 서로를 좋아하면서도 서로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극렬히 적대감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에메란츠와 내가 서로 좋아하게 된 이유는 기본적으로는 서로에 대한 신뢰에 기반하겠지만 본인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경외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화자인 나는 중요한 상을 수상할 만큼 작가로서 성공하지만 에메란츠의 도움 없이는 글을 쓸 수 없는 실생활에서는 무기력한 인물이다. 지성주의를 혐오하는 에메란츠는 나의 도움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에메란츠의 심기를 건드려 의절을 당할 뻔한 상황에서도 그녀가 에메란츠에게 애원하다시피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에메란츠 없이 나는 도저히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에메란츠는 공동체에 대한 헌신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의 일상은 철저하게 통제되어 있고, 누구의 틈입도 허용치 않는다. 나는 이런 그녀의 일상이 늘 궁금하다. 에메란츠는 노년에 이르러 자신의 사후 절차 일부를 나에게 허용한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자신의 추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세상을 떠나고 싶어했던 에메란츠의 목표를 좌절 시킨다. 에메란츠가 쓰러졌을 때 나가 주도적으로 문을 따고 들어가 그녀를 수습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인 도어는 에메란츠라는 한 개인의 삶에서 넘어설 수 없는 그 장벽을 뚫고 들어가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지 나의 선택은 올바른 것인지를 독자로 하여금 묻게 한다. 나의 노력은 결과적으로 에메란츠의 삶을 조금 연장시키는 것에만 성공했을 뿐이니까.


에메란츠가 지향하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가령, 의학에 대한 그의 불신. 몸으로 행해지지 않는 모든 것에 대한 강력한 적의. 현대의학에 대한 불신 같은 것들은 다른 이들이라면 분명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할 만한 일들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것들의 도움을 받지 않고 삶을 비교적 잘 마감한 것처럼 보인다. “에메란츠의 모든 기적은 수평의 평평함이 아니라 비딱하고 비스듬한 것이었다(362쪽).” 삶에 정답은 없다. 너의 삶은 평균을 벗어난 것이니 세상이 정해준 표준대로 돌아가라고 강권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비딱하고 비스듬한 삶이더라도 그 삶 자체의 완결성은 온전히 자기 자신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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