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희 #오직 한 사람의 차지 #속물근성 # 진정성 #문학동네
김금희의 소설에는 긍정하기도 부정하기도 어려운 인물과 상황이 등장한다. 그것이 김금희 소설들에서 발생하는 아이러니이며, 이 아이러니 자체가 소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으로 대두된다. 긍정되는 부분이 진정성이라면 부정하고 싶은 면모는 주로 속물근성과 관련되어 있다. 진실은 속물근성과 진정성 사이에 놓여 있을 것이다. 그 어려운 진실에 관한 탐구가 결국 소설이 되는 것일 것이다.「체스의 모든 것」에 대해서는 이미 감상을 밝힌 바 있으므로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 중 인상적으로 읽은 단편들에 대해 간략히 적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오직 한 사람의 차지」
오직 한 사람이 차지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제 몫의 상실일까? 나는 본인을 인문과 교양으로 포장되기를 바라는 속물이고, 장인은 자신이 가진 물적 기반을 뽐내는 속물이며, 기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유리한 위치를 바탕으로 나를 몰아붙이는 속물이다. 거기다 본인은 원하는 교수 자리를 얻는데 지지부진한 상태다. 낸내는 본인을 거짓으로 포장하고 있는 인물인데, 내가 낸내에게 끌리는 것은 낸내에게 채무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본인이 낸내에게 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속되지만 그렇다고 악이 된 인물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 단편을 다 잃고 나면 우리가 완전히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상실뿐일까라고 되묻는 작가의 직접 화법에 쓸쓸하게 고개를 끄떡이고 싶어지다가도 삶은 그렇게 쉽게 회의가 긍정되어서는 안되는 무엇처럼 느껴져서 망설이게 되는데 그러면 정말 속악한 존재가 되어 버릴 것만 같다.
「새 보러 간다」
김수정은 물화되어야 가치가 매겨지고 유통될 수 있는 책을 만들어야 하는 편집자이다. 윤은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고 그 작품과 관련된 것들을 수집하고 그것에 관한 글을 쓰는 애호가이다. 이 애호가가 추구하는 가치가 과연 물화된 책으로 되어 나올 수 있느냐가 이 작품의 서사이다. 김수정의 다소 억지스러운 소시민적 윤리, 고상한 척하는 팀장의 속물근성, 예술을 좋아하고 거기에 몰두하지만 타인에게 유아적으로 행동하는 윤의 포즈 뿐인 삶 정도를 잘 버무렸더라도 이 단편은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오리지널리티를 냉소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이 끝내 포기되어서는 안 되는 가치가 관계에 대한 윤리가 있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모리와 무라」
지나간 연애에 관한 소설 중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보다 재밌게 읽은 소설은 아직까지 없다.「사랑을 믿다」는 놓쳐 버린 인연에 대한 회한이라기보다는 ‘돈’이라고 쉽게 말하기는 어려운 그러나 그렇다고 ‘돈’이 아니라면 무엇에 관한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싶은 멜랑꼴리가 서려 있다. 멜랑꼴리라는 표현은 주인공이 놓친 버린 인연이 주는 상실감에 대해 완전히 애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리와 무라」에서는 숙부에 대한 충분한 애도에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 면에서 「모리와 무라」는 「사랑을 믿다」의 맞은 편에 있는 소설이다. 나와 운주는 숙부의 유산으로 관계에 대한 자비를 부여받는다. 여기서도 그 유산은 그저 돈이라고도 하기 어렵고 돈 이상의 무엇이라고도 하기 어렵다. 이 소설이 서늘한 것은 관계에 대한 자비는 관계에 놓여 있는 행위자들의 노력으로 통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숙부의 유산이 돈이든 돈 그 이상이었던 그 유산 없이는 나와 운주는 자비를 부여받지 못했을 것이다. 운주가 그 여행에 따라가지 않았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일 수 있다. 여기서 자비는 윤리가 아니라 운명의 영역으로 넘어간다. 그 운명 앞에 인간은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어떤 관계의 최종에서도 우리가 남겨야 하는 일말의 자비 같은 것을(20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