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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창희 Dec 30. 2019

시청자들은 진짜 최고가 누구인지 궁금하다.

지상파 방송 3사 시상식에 관한 단상

2005년 KBS 연예대상이었을 것이다. 유재석이 데뷔 이후 처음으로 대상을 수상했고, 유재석을 좋아하는 후배가 감동이라며 여기저기 연락을 해 왔던 기억이 난다. 나는 자취하는 친구 집에서 연예대상을 같이 봤는데 유재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 역시 상당히 인상 깊게 유재석이 수상하는 모습이 남아 있다. 최근에 지상파 방송 3사가 개최하는 시상식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작년에 이영자가 대상을 받는 모습이었다. 여성 개그맨으로서 그가 감당해온 세월이 묻어나는 수상 소감이어서 무척 감동적이었다.     


나에게는 저 두 가지 기억 외에 지상파 3사에서 개최한 연말 시상식에서 인상 깊게 남아 있는 장면이 없다. 2005년이면 강산이 한 번 바뀌고 다시 절반쯤은 흘러서 뒤 돌아 봐야 할 만큼 오래전이다. 2019년 SBS 연예대상 수상자도 유재석이다. 유재석은 누가 뭐래도 훌륭한 예능인이고 이제는 나도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유재석을 좋아하며 최고라고 칭송하는 지  알 것 같다. 그의 사생활이 어떤지는 자신과 가까운 지인들 외에 알 수 없겠지만 성실히 방송에 임하는 태도와 MC로서의 재능만 봐도 그가 훌륭한 엔터테이너이자 사회인이라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다만, 유재석이 2019년에 연예대상을 받았다는 것에 감동이나 인상 깊다와 같은 표현을 쓰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것은 유재석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상파 방송이 현재 가지고 있는 위상, 그리고 관행적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시상식의 시스템이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는 구조적인 문제라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2019년 SBS 연예대상 소식을 기사로만 접했다. 관련된 뉴스 중에 유재석의 대상 수상 소식보다 더 눈에 띈 것은 김구라의 소신 발언이었다. 연예대상 후보가 8명이나 된다는 점과 자신이 연예대상 후보라는 것을 납득하기 힘들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다(이수지, 2019. 12. 29 기사에서 김구라의 관련 발언을 인용, 위의 이미지도 이 기사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힌다). 나는 저 발언이 단순한 비난이나 비판이 아닌 애정 어린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김구라는 SBS에서 데뷔한 개그맨 중에 드물게 성공한 연예인이다. 아니, 김구라 보다 성공한 SBS 출신 개그맨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SBS를 포함한 다른 지상파 3사 방송사들이 앞으로도 경쟁력 있는 방송사로 남기를 소망할 것이다. 방송사의 위기는 방송사를 플랫폼으로 삼아 활동하는 그에게도 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방송을 포함한 미디어를 연구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상파로 상징되는 전통 미디어들의 위상 하락은 예의주시해서 볼 수밖에 없다. 방송이 앞으로 어려워질 것이라는 얘기는 올 한해 가장 많이 나눈 대화거리 중 하나였고, 그 암울한 전망 때문에 나도 덩달아 우울해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예전부터 관습적으로 해온 행위의 문제점을 자타가 다 알고 있는데 그것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시상식이 축제일 수 있는 것은 상황이 좋을 때라야 가능하다. 논공행상은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나 가능한 것이다. 공동 수상과 같이 시청자 입장에서 공과를 구분하기 어려운 방식의 시상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춘 시상이 이루어져야 함은 물론이고, 상을 받는 사람이 방송사에 어떠한 기여를 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것도 필요하다(이런 측면에서 이영자가 김숙을 대상 수상자로 추천하면서 김숙이 출연한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어느 정도였는지 설명하는 대목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시청자들은 그런 정보를 원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렸을 때 사촌들끼리 모여 연말 시상식을 보며 보신각 종소리를 기다렸다. 그만큼 지상파 3사의 연말 시상식은 큰 이벤트였다. 나는 앞으로도 지상파 3사의 연말 시상식이 중요한 이벤트이자 축제이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상의 개수를 줄이더라도 시청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시상이 이루어져야 한다. 3사 통합 시상식도 고려해 봐야 한다. 지상파의 영향력이 과거와 같지 않은데 방송사 별로 이루어지는 시상식이 갖는 의미는 앞으로 퇴색될 가능성이 높다. 드라마, 음악, 예능을 3사가 돌아가며 통합하여 주관하는 방식도 고려해 볼 만하다. 가령, KBS는 드라마, MBC는 음악, SBS는 예능을 주관하고 다른 해에는 주관하는 분야를 번걸아 하는 방식이다. 중계는 3사가 다 하거나 시청자의 시청권 보장 차원에서 2사만 공동으로 중계하는 것도 가능하다. 올림픽, 월드컵과 같은 국민관심행사도 이런 식으로 중계한 경우가 있기 때문에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 판을 키우면 적어도 동아시아 쪽에서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글로벌한 행사가 될 수 있다.      


나는 지상파 방송을 보면서 성장했고, 막연하게 방송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며 청소년기를 보냈고, 대학교 때는 교내에서 방송국 생활을 했다. 대학원에서는 방송을 포함한 미디어를 전공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렇고 나는 지상파 방송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기를 바란다. 과거에 방송은 희소한 자원으로 여겨졌다. 이제는 시청자의 관심이 희소한 자원이 되었다. 볼거리가 넘치는 미디어 환경에서 시청자들은 자신이 무엇을 봐야 할지에 관한 정보를 원한다. 시상식이 신뢰를 회복하면 어떠한 방식으로든 시청자들이 수상한 프로그램을 다시 찾아볼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이것은 방송사 입장에서도 시청자 입장에서도 유익한 일이다. 방송사 입장에서 오랫동안 유지해온 형식을 바꾸는 것은 물론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변화가 불가피해 보인다. 그 변화를 혁신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문헌     

이수지 (2019. 12. 29). 김구라 “SBS 연예대상 이제 바뀔 때가 됐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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