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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누리 Nov 05. 2023

실패의 고통을 어떻게 감내해야 할까요?


동우 군,

좋은 질문 해주어 고마워요. 저도 그 부분이 항상 고민이었습니다.


실패했을 때의 고통, 좌절, 비난 등등은 모두 저 혼자 감당해야 할 것들이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오장육부 뼈마디가 다 녹아내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을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실행한 모든 도전의 목적은 우리 가족이 잘 되고, 우리 사회에 기여하고, 더불어 나도 잘되는 것에 있었지만, 그런데도 저는 항상 '이 일이 과연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인지, 별로 내키지 않지'를 최우선 기준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두렵고, 어렵고, 남들이 다 말려도 제가 하고 싶으면 실행에 옮겼습니다. 반대로 하기 싫으면 안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비난과 고통도 제가 감내해야 할 당연한 과정이라 받아들였습니다. 선택할 자유와 선택으로 인한 고통은 짝꿍입니다. 물론 선택의 자유와 기쁨 또한 짝꿍입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다 내 것이라는 게 마음에 듭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지속해서 관찰했습니다. 그리고 재밌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제가 실패했을 때와 똑같이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괴로운 게 낫지 않나요?


최근에는 어떻게 하면 실패를 해도 덜 괴롭고, 성공해도 덜 흥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편 기회비용이라는 개념 의사결정의 머뭇거림으로 인한 괴로움을 덜 주었습니다. 기회비용이 냉철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내 명확한 기준이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회비용은 내가 선택한 일에 최선을 다하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습니다.




저는 특정한 한 가지를 선택하기 위해서 잃어버리는 다른 어떤 것을 항상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제가 밖에서 일을 하는 시간은 가정에서 엄마가 직접 자녀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챙겨줄 수 있는 시간과 대체된 것이었습니다. 새벽에 출근할 때, 자다 말고 쫓아 나와 방문에 머리를 부딪히며 우는 아기를 뒤로하고 울면서 출근했던 경험은 엄마로서의 죄책감을 제 평생에 지웠습니다. 이것들은 돈으로 환산할 수도 없을 만큼 비싼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깥일을 할 때는, 지금 내 앞에 놓여 있는 상황을 내가 돌볼 수 없는 아이의 정서 가격만큼 값지게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실망도 컸습니다. 예를 들어, 자녀와의 저녁 식사 시간을 희생하여 만난 클라이언트가 고작 예쁘고 린 여자 사장 농담 따먹기나 하고 싶어 할 때는 여자로 태어난 게 억울하기까지 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제 경우엔 회식 자리가 자녀 양육이라는 기회비용보다 더 값어치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예로는 학업이 있습니다. 저의 학위 과정은 다른 사업을 할 수 있는 시간과 대체된 것입니다. 공부하면서도 항상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업을 나중으로 미뤄도 성공할 수 있을까? 학교 다니는 게 재밌기는 한데, 이 나이에 공부한다고 이렇게 놀고먹어도 되는 걸까? 저에게 학업은 놀고먹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학교에서 돈 버는 법 가르쳐줄 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그것도 아니고, 나 혼자 도태되면 어떡하지??? 이런 망상을 하면서 연구에 몰입하지 못하고, 슬럼프에 빠진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사람에게 주어진 환경은 다 다릅니다. 저마다 적절한 타이밍도 다 다릅니다. 사람들은 당장 실행할 수 있지않으면서, 상상 속에서 막연히 하고 싶어 하는 일과 현실적으로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갈등하느라 정작 지금 누려야 하는 수많은 을 놓치면서 삽니다. 이것은 어리석습니다.


내가 어떤 한 가지를 선택함으로써 놓치게 되는 다른 무엇에 대한 두려움 또는 걱정이 크다는 것은 내 선택한 것의 가격이 그만큼 비싸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선택한 이게 얼마짜린데!!!'


돈 생각하면 지금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반대로 지금 하는 일이 상상 속의 그 일 보다 싸게 느껴진다면, 당장 상상 속의 그 일을 현실로 가져다 놔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나 자신에게 지나치게 가혹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결론은 언제나 ‘좋았다’, ‘재밌었다’입니다. 음엔 더 세게, 더 멋있게 해 봐야지 하는 기대가 차오르기도 합니다. 잘 됐든 못 됐든 어찌 됐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따라왔기 때문에 그런 듯합니다.


최근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면서 저는 여전히 두렵습니다. 그렇지만 이 또한 내가 찾아서 선택한 내 길이고, 내 길에 펼쳐질 모든 것들이 다 내 몫이라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그 어떤 길은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몫이겠죠. 그건 그 사람의 것입니다.


흥미진진하지 않나요?


저는 두려워하면서 계속 전진할 겁니다.

이게 높은 불확실성 속에서도 꾸준히 도전해 온 저의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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