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의 누』: 최초의 신소설인가,
친일의 흔적인가

혈의누를 읽고 by 이인직

by 사회철학에서 묻다

1. 서론

대표적 친일 소설 중 하나로 알려진 “혈의 누”는 이인직의 작품으로, 한국 최초의 신소설이다. 이인직은 “혈의 누”에서 기존 한국 소설의 전통을 타파하고, 사건보다는 인물 위주의 묘사와 더불어 새로운 연애관 등 새로운 사상을 주제로 삼았다. 이인직은 소설가로서의 성취와 달리 후에 이완용과 함께 친일 활동을 하며 큰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혈의 누’나 ‘귀의 성’과 같은 그의 작품들은 친일 행적으로만 평가하기에는 문학적 가치가 매우 크다. “혈의 누”가 대한민국 최초의 신소설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대표적 신소설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전까지의 소설과 달리 “혈의 누”는 개인의 심리 묘사와 새로운 세상의 갈망을 통해 사회문제 고발이라는 소설의 역할에 충실했기에, “혈의 누”를 친일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시하는 것은 잘못된 처사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런 작품을 통해 과거의 문제를 고민하고 작품이 줄 수 있는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일본의 무자비하고 불법적인 침략은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 그리고 이인직의 친일 행보는 일제보다 더욱 악랄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가 남겨둔 작품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함께 그 작품에서 취할 수 있는 장점을 취하는 것이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우리 민족이 가져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2. 줄거리

“혈의 누”는 “혈의 누”와 “속 혈의 누”로 이루어져 있다.


2-1 “혈의 누”

1편의 성격을 가진 “혈의 누”는 옥련이라는 중심인물을 통해 이야기가 진행된다. 옥련이의 가족은 청일전쟁의 여파로 생이별하게 된다. 옥련이의 어머니는 전쟁 속에서 헤어진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떠돌던 중 불량배를 만나 위기에 처한다. 다행히 일본 군인에 의해 구조되고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한 옥련이의 어머니는 집에서 남편과 옥련이를 기다리지만, 수일이 지나도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 이에 실망한 옥련이의 어머니는 벽에 대동강으로 자살하러 간다는 글을 남기고 대동강에 뛰어든다. 옥련이 어머니의 생각과 달리 자살은 실패하고 공장팔과 사공에 의해 구출된다. 옥련이의 아버지 김관일은 집에서 옥련이와 옥련 어머니 최 씨 부인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돌아오지 않자, 미국으로 공부하러 갈 생각을 한다. 옥련이 아버지는 최 씨 어머니의 아버지인 최 주사에게 비용을 받고 미국으로 떠난다.


옥련이는 피란 중 어머니와 아버지와 헤어진 후 다리에 총상을 입는다. 총상을 입고 산에서 하루를 보냈지만, 다행히 일본 군의관에 의해 구조된다. 일본 군의관은 옥련이 어머니가 벽에 남긴 메시지 내용을 알고 옥련이를 불쌍히 여긴다. 이에 옥련이를 일본으로 보내고 자식이 없는 자신의 부인이 옥련이를 양녀로 삼으라고 제안한다. 옥련이는 처음에 불안감과 공포를 느끼지만, 이노우에 부인의 호의를 느끼게 된다. 이노우에 부인의 호의에 옥련이는 일본에서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이후 이노우에 군의관이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이노우에 부인은 재혼을 결심하지만 옥련을 보고 생각을 바꾼다. 그러나 혼자 사는 이노우에 부인은 극도의 외로움을 느끼고 옥련이가 모든 재앙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옥련이는 삶의 허무함 속에서 자살을 결심하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다. 여전한 이노우에 부인의 싸늘한 시선에 옥련이는 가출하고 무작정 배에 올라탄다. 거기서 옥련이는 구관서를 만나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다. 구관서의 도움으로 옥련이는 우등생이 되고 그녀의 이야기가 신문에 실리게 된다. 미국에 거주 중이던 그녀의 아버지는 옥련이의 소식을 보고 수소문한 끝에 부녀가 상봉한다. 아버지로부터 옥련이는 어머니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낸다. 평양에서 쓸쓸히 남편을 기다리던 어머니 최 씨 부인은 옥련이의 편지를 받는다.


2-2 “속 혈의 누”

2편인 “속 혈의 누”는 옥련이와 구관서의 신연애사상에 대한 이야기다. 옥련이의 편지를 받은 최 씨 부인은 그녀의 아버지를 찾아간다. 최 주사는 집에서 술에 취해 부인과 양자에게 여러 쓴소리를 하지만, 다음 날 집의 상황을 정리하고 딸과 함께 미국으로 향한다. 미국으로 간 최주사와 최 씨 부인은 드디어 옥련과 상봉한다. 최주사와 최 씨 부인은 구관서와 옥련이가 서로 혼인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조선으로 바로 돌아가 혼례를 올리기를 원한다. 하지만 구관서는 공부가 우선이고 본인들의 결혼은 본인들이 결정해야 하며, 부모가 결정할 사항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만약 원한다면 옥련이는 조선으로 돌아가 다른 혼인 상대를 찾으라고 말한다. 보수적인 최주사는 구관서가 주제넘고 버릇없다고 느끼지만, 최 씨 부인은 오히려 그런 구관서를 마음에 들어 한다. 미국에서 체류하는 날이 끝나고 최 씨 부인과 최주사는 조선으로 향하고, 최 씨 부인은 옥련의 당당한 태도에 흐뭇함을 느낀다.


3. 신소설의 의미

이인직의 “혈의 누”는 한국의 대표적인 신소설로 그전의 소설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조선시대의 전통적 소설들은 권선징악의 교훈과 사건 중심의 서사로 쓰였다. 또한 조선시대의 계층적 질서를 존중하고 그에 따른 운명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홍길동전”처럼 계층적 질서를 타파하고자 하는 소설도 존재하지만, 대부분 사회 변혁보다는 현 체제 내에서 더 나은 세상을 꿈꾸었다.


하지만 “혈의 누”는 매우 다르다. “혈의 누”는 사건 중심보다는 인물의 심리 묘사를 중심으로 극을 이끌어간다. 또한 구체제 혹은 운명론 중심의 이야기 구조가 아니라 개인의 노력을 통한 운명 개척을 중요시한다. 이를 위해 작가는 신분제와 여성을 억압하는 구조에 저항하고 대안적 미래를 살아가는 여주인공을 보여주어, 독자가 여주인공과 감정이입하고 공감할 수 있게 해 준다.


신소설은 “인간중심주의”, “지향성”과 “실존주의” 등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세계관의 등장과 함께한다. 영국의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는 지식이 단순히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통해 힘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베이컨은 귀납법을 중시했고, 모든 지식은 경험적 체험을 통해 검증되어야 함을 강조했다. 이러한 베이컨의 귀납법은 새로운 과학적 사고의 중심이 되었고 이를 통해 새로운 과학자들이 생겨났다. 그 이후 아이작 뉴턴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표했고, 이는 자연을 수학적 법칙으로 설명 가능하게 했다. 따라서 자연은 신비한 힘이 아니라 특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기에, 지식 축적으로 정복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뉴턴의 사상에 대한 당시의 믿음은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의 “라플라스의 악마” 개념에서 잘 드러난다. “라플라스의 악마”란 어떤 전지적 존재가 우주의 모든 입자 위치와 운동량을 알고 있다면, 물리 법칙을 통해 과거와 미래를 완벽히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가 우연적 법칙이 아니라 확실한 자연적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주며, 이러한 인간에 대한 자신감은 운명론적 세계관을 거부하고 인간이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신소설의 기반이 된다.


반면 개인에 대한 심리 묘사는 “지향성”과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지향성”이란 에드문트 후설이 “현상학”에서 발전시킨 개념으로, 인간의 의식은 항상 무언가를 향해 있다고 설명한다. 인간이 세상에 있는 대상을 해석할 때 객관적 시선이 아닌, 의식에 내재한 무엇인가가 해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의 과거 경험과 지식으로 형성된 의식의 지평이 대상 해석의 기반이 되며, 객관성보다는 주관성을 강조한다. 또한 “실존주의”는 인간이 세계-내-존재로서 세상의 영향을 받지만 개인의 결단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인간이 편견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실존을 향해 변할 수 있는 존재로 본다. 다만 개인이 “불안”과 “양심”을 통해 이를 깨달아야 하므로 주관적 인식을 강조하게 된다. 따라서 과거의 사건 중심 소설에서 벗어나 인간의 심리가 중심이 되고, 심리 상황이 새로운 방향 전개의 기반이 될 수 있음을 묘사한다.


“혈의 누”의 여주인공 옥련이는 인간중심주의에 따라 활동한다. 거부할 수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부상을 당해 일본으로 송환되지만, 결국 구관서와 함께 미국으로 가며 개인의 노력으로 우등생이 된다. 우등생이 된 옥련이는 그리워하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나게 된다. 이처럼 전쟁의 혼란 속에서도 개인의 노력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주며, 조선시대에 여자의 결혼이 가족 남성들의 의사로 결정되던 것과 달리 옥련이와 구관서는 개인의 선택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현 체제를 비판하고 개인의 노력을 강조한다.


하지만 체제를 거부하고 운명을 찾는 개인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용기를 가지고 운명의 굴레를 벗어나려면 다양한 경험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의 기준에 억압되어 살아가기에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 변할 수 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인간이 운명을 개척하는 자아를 가지려면 “불안”과 “죽음”에 대한 인식이 필수적이다. 옥련이는 가족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고통받았고, 어머니가 벽에 남긴 글로 좌절했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고 일본에 가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노우에가 죽고 이노우에 부인이 차가워지자 옥련이는 “불안”에 휩싸이고 자살을 결심하지만 실패한다. 이 실패는 “죽음”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어 옥련이는 가출하고 구관서와 새로운 미래를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


4. 결국에는 사람과의 관계

신소설은 과학에서 시작된 “인간 중심주의”와 주관성을 강조하는 “지향성”과 “실존주의” 영향 아래 탄생했다. 하지만 “혈의 누” 같은 신소설은 사람 간 교류의 중요성도 보여준다. 우연성이 지배하는 자연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에 기반한 자연과 주관성 강조는 타인과의 교류를 부정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은 계기가 없으면 움직이기 힘든 존재다. 변화의 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하이데거에 따르면 변화의 계기는 불안과 죽음 인식이라는 개인적 과정이다. 인간중심주의에 따르면 자연 변화는 객관적 사실에 따르지만,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을 감안하면 타인과의 교류가 변화의 큰 계기임을 부정할 수 없다. 옥련이의 변화는 이노우에 부부와 구관서에 의해 가능해진다. 인간의 이성은 확실성을 추구하지만 미래의 불확실성 앞에서는 작동하기 어렵다. 종교에 대한 열망, 칸트의 12개 범주 등이 이를 보여주듯, 불확실성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다양한 세계관과 이념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불안감을 줄이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만든 체제와 사상에 억압당하는 개인이 이를 타파하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결국 사람이다. 홀로 불안과 실패를 짊어지는 것은 시지프의 돌과 같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하면 돌은 짐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향한 도전의 상징이 될 수 있다. 옥련이가 일본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이노우에 덕분이며, 미국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은 구관서 덕분이다. 결국 결국 인간의 내적 결핍을 채워주는 존재는 함께하는 사람들이다. 사르트르의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 대신, 여기서는 “타인은 계기이자 안식처”가 된다.


5. 물의 의미

“혈의 누”에서 물은 자주 등장한다. 최 씨 부인은 대동강에 몸을 던졌고, 옥련이는 자살을 위해 항구로 향했다. 옥련이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때마다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다시 미국으로 향한다. 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인간은 물 없이는 살 수 없고, 물로 더러움을 씻는다. 물은 생명과 깨끗함을 상징한다. 또한 물을 건너가는 행위는 새로운 삶을 의미한다. 바다나 강을 건너려면 배를 타야 하고, 이는 기존 삶의 방식과 전혀 다른 상황을 의미한다. 물속에서는 폐가 아니라 아가미로 숨을 쉬듯이, 완전히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거듭나야 한다. “혈의 누”에서 물은 변화를 가져온다. 최 씨 부인은 물에 뛰어들었다가 구조되어 세상에 대한 인식이 변했고, 옥련이도 일본과 미국으로 바다를 건너며 억압에서 벗어난다. 결국 물은 새로운 삶의 생명을 상징한다.


6. 친일 사상이라는 비난

“작가의 배경과 행적이 작품 해석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은 끊임없이 제기된다. 어떤 이는 작가의 생각이 작품에 반영되므로 행적과 분리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전기적 비평 혹은 작가 중심주의). 반면 작가의 배경을 작품 해석과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텍스트 중심 비평)도 있다. 이들은 작가의 의도가 곧바로 독자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며, 언어는 세계와 1대 1 대응하지 않고 차이를 통해 의미를 얻으므로 독자는 나름의 해석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인직의 “혈의 누”도 이러한 두 입장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물론 친일 행적은 용서받기 어렵기에 “혈의 누”는 친일작품으로 비난받는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태도가 무조건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서론에서 언급했듯 이인직의 친일 행적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가 남긴 작품의 의의와 사회적 가치를 무시하고 배척하는 것은 그의 친일 행적에 매몰된 결정이다. 친일 행적 비판은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의지 표현이며, 국가 발전을 위한 것이다. 하지만 작품 자체를 무분별하게 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만약 작품이 친일 행적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정당한 비판과 대안적 삶을 제안한다면 남겨질 가치가 있다. 그렇다면 “혈의 누”는 작품적으로 친일 행적을 옹호하는가?


6-1. 일본에 대한 맹목적 찬양?

일본 찬양은 몇 가지 대목에서 드러난다.

첫째, 옥련이가 총상을 입었을 때 일본 군의관은 청나라 총탄엔 독이 있지만 일본 총탄엔 독이 없어 살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는 일본이 더 문명화되었다는 인상을 준다. 독을 사용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어떠한 방법으로라도 죽이겠다는 의도를 가진다. 이는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양에서 독에 대해 묘사한 다양한 작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반면에 일본은 살인보다는 적군 제압에 의미를 두고, 부상당한 민간인을 구해주고 치료해 주는 인간적인 면을 보여준다. 생명을 존중하고 민간인을 구해주는 이러한 행동은 문명화와 연관 지을 수 있다.


둘째, 옥련이는 일본 군의관 이노우에에 의해 구조되고, 그의 가정은 옥련이를 따뜻하게 맞아준다. 반면에 최 씨 부인은 산에서 조선인 부랑자를 만나는데 그는 최 씨 부인을 강간하려 하지만 일본 군인에 의해 그녀는 구조된다. 이러한 대조는 같은 민족이라고 모두 친절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오히려 문명화된 일본인들이 더 친절할 수 있음을 부각하며, 이는 일본의 강제 합병에 대한 부정성보다는 긍정성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셋째, 이노우에 부인은 남편이 죽은 뒤 재혼을 고민하지만 자유로운 결혼 제도를 통해 일본이 조선보다 진보된 듯 보인다. 양녀에 대한 냉대는 최주사의 양자 대우와 대조되어, 결국 일본 문제라기보다 인간 문제로 합리화된다. 이노우에 부인은 남편의 사망 소식을 듣고 주저 없이 재혼을 택한다. 이는 당시 조선의 가부장제에 억압된 조선 여성에 비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일본의 모습은, 자유를 억압하는 조선보다 더 통치의 정당성을 갖추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보면 이런 내용은 비난받을 만하다. 조선은 쇄국정책으로 문을 닫았고, 일본은 서양 문물을 받아들여 강대국이 되었으며 조선을 합병하려 했다. 일본은 문명국이라는 구실로 조선을 지배하려 했고, 이런 시대상에서 일본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친일 행적으로 볼 수 있다.


6-2. 일본 혹은 미국, 아니면 개인의 노력

하지만 일본에 대한 찬양이 전부는 아니다.

첫째, 옥련이가 최종적으로 구원받고 가족과 상봉하는 곳은 미국이다. 이는 작가가 일본이 아닌 미국을 이상향으로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혈의 누”의 목적이 옥련이라는 역사의 희생자가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의 성공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일본은 종착역이 아니라 잠시 쉬어가는 정차역일 뿐이고 미국이 종착역이다. 따라서 일본이 아니라 미국에서 그녀가 자아를 찾고 가족과 다시 결합하는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상향임을 보여준다.


둘째, 옥련이와 구관서의 자유연애사상은 일본에 기반한 것이 아니다. 일본 또한 완전한 자유연애사상을 추구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옥련이와 구관서는 최주사와 김관일의 혼인 제안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거부한다. 당시 조선에서 결혼은 가정의 일이었고, 가정의 일원은 이를 거부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들은 공부라는 개인적 성취를 우선하고 결혼이라는 제도를 스스로 선택하려 한다. 이노우에 부인이 옥련이의 존재로 인해 결혼을 망설이다가 끝내 포기한다는 것은 일본의 연애사상도 완벽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옥련이가 미국에서 구원받고 자유로운 사상을 펼친다는 점은 이인직이 일본보다는 미국식 민주주의를 선호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혈의 누”는 개인의 행동 중요성과 시대상을 반영했을 때 어느 정도 의도가 보이는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독자의 몫이지, 사회 전체가 나서 특정 작품을 비난하고 사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인간은 이성과 감정을 모두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감정은 더 빠르고 영향력이 크며, 이성은 심사숙고 후 결론을 낼 수 있다. 감정이 속도가 빠르다는 것은 사회의 헤게모니를 형성하는 데 이성이 아닌 감정이 앞선다는 의미다. 만약 우리가 감정에 휩쓸려 작가의 행위를 통해 작품을 해석하고 작품의 긍정적 영향을 거부한다면 우리는 역사에 다시 죄를 짓는 것이다.

친일 행적은 개인의 주관적 영달 혹은 주관적 판단으로 국가에 이득이 되는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나라를 일본에 넘기면 약속되는 부와 명예, 혹은 조선이 가망 없으니 더 발전한 나라를 통해 문명화하는 것이 조선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작품이 개인적 해석에 좌우되고, 감정에 휩싸인 결정을 내린다면 이는 우리나라에 큰 이득을 줄 수 있는 요소마저 주관적 판단으로 제거하는 것과 같다.


각종 사기와 살인까지 저질렀던 흉악 범죄자 카라바조는 예술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종교적 작품을 그릴 때 리얼리즘과 자연주의를 도입했을 뿐만 아니라, 평범한 현실을 통해 영적이고 신성한 경험을 전달하려고 했다. 이는 종교는 신비롭고 교회의 권위는 절대적이라는 생각에 균열을 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우리가 카라바조의 행동에 직접 근거해 그의 작품을 거부했다면, 그의 미술사적 의의는 사회 발전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이데거, 사드 등의 작품도 마찬가지로 그 의미를 잃었을 것이다.


7. 결론

“혈의 누”는 친일작품인가, 대한민국 최초의 신소설인가? 명확한 답은 쉽지 않다. 독자가 작품을 읽으며 해답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롤랑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이 의미하는 바다. 저자는 죽었고 독자가 주체다. 하지만 그의 행적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며,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 그의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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