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합리인은 없다: 선택설계와 자유주의 개입주의

넛지를 읽고

“모든 사람들은 합리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은 본인에게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얼마나 멋있는 말인가? 우리 인간은 르네상스가 가져온 인본주의 혁명 이후, 우리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합리적 인간상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목표였지만, 인간이 인본주의 이후 과학 혁명을 거치면서 우리 인간에 대한 믿음은 더욱더 강해졌고 “모든 인간은 합리적이다”라는 문장은 우리 인간이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니라 우리 인간을 정의 내리는 문장으로 바뀌었다.


이에 발맞추어, 고전경제학파들은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가정하에 많은 경제학 이론을 만들었다. 이는 인간은 합리적이기 때문에 국가의 개입은 최소한으로 그리고 개인의 선택에 대한 믿음은 최대한으로라는 신조하에 작은 정부론이 찬양되기 시작했다. 많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인간의 합리성에 대한 믿음은 많이 흔들렸지만, 인간의 자유와 선택을 믿어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기치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크게 깃발을 휘날리고 있다.


넛지는 이러한 사회적 통념에 강력한 한방을 날린다. 넛지는 ‘사람은 항상 합리적’이 아니라 ‘맥락에 따라 합리성의 성능이 달라진다’고 말한다. 사람은 ‘시스템 1(자동)’과 ‘시스템 2(숙고)’ 두 체계를 번갈아 쓴다. 시스템 1은 빠르지만 편향에 취약하고, 시스템 2는 느리지만 계산이 가능하다. 이는 특성으로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다양한 편견과 비합리성에 지배받는다고 말한다.


넛지가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편견은 다음과 같다.

첫째, 앵커링(기준점 의존). 최초 제시된 숫자나 정보가 이후 판단을 끌어당긴다.

둘째, 비현실적 낙관주의 사람들은 자기가 남들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셋째, 손실 기피. 사람들은 자기의 손실이 이득보다 더 값어치 있다고 생각한다.

넷째, 현상유지 편향. 사람들은 지금의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새로운 현상을 맞이하는 것보다 더 좋다고 생각한다.

다섯째, 프레이밍. 사람들은 프레임에 영향을 받는다.

(100명 중 90명이 산다. vs 100명 중 10명이 죽는다)


사람들은 위의 편견에 취약하지만 올바른 피드백과 정보 그리고 많은 경험을 가진다면 숙고시스템의 사용이 늘어나 더욱 합리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제는 무엇인가?? 문제는 사람들이 삶에서 매우 중요한 선택을 내릴 때 숙고 시스템보다는 자동 시스템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나의 삶을 통째로 바꿀 수 있는 선택에 대해 적절한 피드백과 정확한 정보 그리고 많은 경험을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바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고 현대인들은 자기의 삶을 살아가기도 바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적으로 사람들의 선택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올바른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적절한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면 적절한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적절한 선택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이 특정한 경우에만 합리적일지라도 사람들의 고유한 선택을 존중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물론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넛지에 따르면, 세상에는 100% 고유한 선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선택 설계자가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선택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급식실에 갔을 때 음식이 어떠한 방식으로 진열되어 있느냐에 따라 학생들이 건강한 음식을 섭취할지 아니면 패스트푸드를 선택할지가 달려있다는 말이다. 학생들은 눈높이에 맞고 쉽게 선택하고 자기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음식에 손이 쉽게 가기 때문이다.


또한, 디폴트 옵션 또한 중요하다. 사람들은 디폴트에 대한 믿음과 정부의 취약성 그리고 귀차니즘 때문에 디폴트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다. 디폴트는 설계자의 선택이다. 많은 사람은 ‘기본값’을 따르므로, 기본값이 결과를 좌우한다. 따라서 디폴트는 투명하고 정당화 가능해야 한다. 만약, 은퇴 연금을 설계하는 선택 설계자가 디폴트를 “은퇴 연금에 가입하지 않겠다” 로 설정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은퇴연금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도덕적인가?? 물론 아니다.


정부와 우리 사회는 사람들이 비합리적일 수 있고 선택설계자의 선택에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고 사람들이 더 좋은 삶을 살기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하고 이를 저자는 “넛지”라고 부른다. 저자는 책의 전반에 다양한 넛지의 예시를 보여주고 넛지가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의 경제학 정책에 “넛지 정책”을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사람들이 자신의 선택의 자유를 침해받지 않으면서 더 건강한 선택을 하게 만든 그의 정책은 매우 큰 사랑을 받았고(물론 비난도 많이 받았다) 행동주의 경제학자인 탈러는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넛지는 자유주의 개입주의라고도 불린다. 자유주의 개입주의란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넛지라는 장치를 통해서 사람들이 더 바람직한 행동을 선택하도록 간접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이는 매우 바람직한 접근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자유주의 경제학자들과는 다르게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고 자기들이 원하는 선택은 공통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건강·노후·환경을 원한다. 다만 ‘어떤 방법으로’ ‘어느 정도까지’ 개입할 것인지는 논쟁의 대상이다. 따라서, 개입주의는 개인의 선택을 무시하기 때문에 잘못되었다는 주장은 옳지 않다.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삶이란 존재하지만, 이를 위해서 사람들의 선택의 개수를 제한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하지만, 자유주의 개입주의는 선택의 개수는 두지만 적절한 장치를 마련하면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한다.


비판도 있다. 자율성 침해 논란, 효과의 지속성·재현성, 집단별 이질성, 그리고 ‘슬러지(의도적 마찰)’와의 경계 문제다. 하지만, 넛지라는 행동경제학만이 갖는 독특한 장점은 있다. 그리고 다른 학문의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 줄 때 우리 사회는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투명한 넛지 + 정보 제공 + 구조적 정책’이 함께 가야 한다. 그래야 자유를 지키면서도 더 나은 선택을 돕는다. 선택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분명하다. 첫째, 설계의 존재를 투명하게 밝힐 것. 둘째, 언제든 빠져나올 수 있게(탈퇴 용이성) 할 것. 셋째, 실제 효과를 데이터로 검증하고 정기적으로 수정할 것. 넛지는 자유를 대신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바쁜 일상 속에서도 더 나은 나에게 한 걸음 다가가도록, ‘길’을 조금 더 환하게 밝혀줄 뿐이다.


keyword
이전 04화자유와 전체주의 사이: 하이에크 『노예의 길』다시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