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작동하는 사회는 불확실성을
비용으로 관리한다

by 사회철학에서 묻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점점 더 불확실해지고 있다. 인구는 줄고, 재정은 빠듯해지며, 기술은 빠르게 바뀐다. 지정학적 긴장은 일상이고, 기존의 질서는 흔들린다. 흥미로운 점은 이 불확실성이 어느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거의 모든 사회가 비슷한 압력을 동시에 받고 있다. 그럼에도 결과는 극명하게 갈린다. 어떤 사회는 문제를 관리하며 적응하는 반면, 어떤 사회는 문제 앞에서 멈춰 선다. 최근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여러 기사들은 이 차이가 능력이나 자원의 문제가 아니라, 불확실성을 대하는 태도의 문제임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1. 문제를 ‘비용’으로 다루는 시스템: AI와 제약 산업

제약 산업은 본질적으로 실패율이 높은 산업이다. 임상시험에 들어간 후보 물질의 10%만이 실제 약이 되고, 하나의 신약이 나오기까지는 10년 이상의 시간과 수십억 달러가 든다. 그럼에도 제약 기업들은 생성형 AI를 빠르게 받아들이고 있다. AI가 완벽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제약 회사들은 AI가 실패할 수도 있고, 경쟁에서 뒤처질 위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도입을 선택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더 비싸기 때문이다. 실패를 줄이기 위해 지금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실패를 방치한 채 미래에 더 큰 대가를 치르는 것보다 낫다는 판단이다.

이것이 잘 작동하는 시스템의 특징이다. 실패를 없애려 하지 않고, 실패를 관리 가능한 비용으로 바꾼다. 불확실성을 외면하지 않고, 계산 가능한 대상으로 끌어온다.


물론 여기서 끝나지 않고 국가차원 에서의 정책 변화도 필요하다. 혁신에 드는 비용의 감소는 약에 적용되는 특허에 대한 조정도 필요하다. 특허의 기간을 줄이고 국가에서 직접 제약 회사와의 협상을 통해 약의 가격도 줄인다면 이는 윈윈이 될 것이다.


2. 문제를 ‘정치’로 미루는 시스템: 일본의 외국인 담론

반면 일본 정치에서 보이는 모습은 정반대다. 일본의 구조적 문제는 분명하다. 급격한 인구 감소, 노동력 부족, 성장 정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일본의 경제와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이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기보다 ‘외국인 문제’라는 프레임을 선택했다. 외국인 노동자와 관광객이 일본 사회를 위협하고 있다는 서사는 듣기 쉽고 정치적으로 소모하기 좋다. 하지만 이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 은폐에 가깝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의 농업, 간병, 관광, 지방 공동체는 이미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유지되기 어렵다. 외국인은 일본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정치가 문제를 다루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거울에 가깝다. 지금의 선택은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결정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미래로 미루는 선택이다.


3.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 프랑스의 정치 마비

프랑스는 또 다른 유형의 실패를 보여준다. 프랑스의 문제는 잘못된 정책 선택이 아니다. 선택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다. 예산안조차 통과시키지 못하는 정치, 좌우 포퓰리즘의 방해, 책임을 회피하는 중도 정치, 그리고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유권자까지 얽혀 프랑스 정치는 사실상 멈춰 섰다. 그 결과는 명확하다. 국방비를 늘려야 하고, 산업 경쟁력을 회복해야 하며, 재정 구조를 개혁해야 하는 시점에 프랑스는 아무 결정도 내리지 못한다. 문제를 미룬 대가는 ‘정치적 무능’이라는 형태로 이미 현실이 되었다.


4. 한국의 모습은 어디쯤인가

이 장면들은 낯설지 않다. 한국 역시 비슷한 기로에 서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는 이미 통계가 아니라 현실이 되었고, 연금·의료·재정 문제는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정치권은 여전히 구조 개혁보다 단기적 인기와 선거 계산에 더 민감하다. 연금 개혁은 “미래 세대의 문제”로 미뤄지고, 노동시장 개혁은 “갈등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회피된다. 대신 분노를 전가할 대상과 자극적인 의제가 반복 소비된다. 이는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가 아니라, 문제를 관리하지 않는 정치다.



5.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AI가 제약 산업을 구원한 것이 아니다. 외국인이 일본을 위협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프랑스의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다. 오늘날 국가와 산업을 가르는 기준은 능력이나 자원이 아니라 태도다. 불확실성을 지금 다룰 용기가 있는가, 아니면 정치적으로 미룰 것인가. 잘 작동하는 사회는 불확실성을 비용으로 관리한다. 망가진 사회는 불확실성을 정치로 미룬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현실이 된다.\



참고 기사:

https://www.economist.com/leaders/2026/01/08/france-is-paralysed-and-everyone-is-to-blame

https://www.economist.com/leaders/2026/01/08/ai-is-transforming-the-pharma-industry-for-the-better

https://www.economist.com/leaders/2026/01/08/does-japan-have-a-foreigner-prob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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