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쿠바 미사일 위기와 베를린 공수 작전처럼, 강대국 간의 힘겨루기는 종종 특정 사건을 통해 드러났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촉발한 미국의 관세 전쟁 역시 그런 사례다. 이 관세 전쟁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물리적 충돌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대만이 강대국 간 갈등의 새로운 전장이 된다면, 이는 세계 평화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1949년, 중국 국민당은 공산당과의 내전에서 패한 뒤 정부를 대만으로 옮기며 ‘중화민국’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중국 공산당은 대만을 독립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자국의 ‘반란 지방’으로 간주한다. 실제로 대만은 독립을 공식 선언하지 않았고, 국제법상 완전한 독립국가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대만은 자율적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며, 이에 미국은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입장을 고수한다. 이는 미국이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대만에 무기를 공급하는 방식이다.
최근 세 차례의 대선에서 대만의 독립 성향 정당인 민주진보당이 연속 승리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동시에, 세계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TSMC의 존재는 대만의 전략적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여기에 중국의 급격한 방위비 증가는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빠르게 약화시키고 있다. 전략가들은 미국이 대만 방어 의지를 명확히 하면 중국은 침공을 단념할 것이라 주장하지만, <이코노미스트>는 세 가지 요인이 이를 흔들고 있다고 분석한다.
첫째,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군사 억제력을 약화시켰다. 그는 미국이 세계의 경찰 역할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고,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150%~200%의 관세로 대응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현재 145% 관세와 큰 차이가 없다. 중국은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전쟁 대응을 통해 미국이 대만 사태에도 군사 개입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다.
둘째, 중국은 무력 침공뿐 아니라 '회색지대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해협 천둥 훈련에서 중국은 38척의 군함으로 대만을 포위하고 해상검문과 임시 봉쇄가 가능함을 과시했다. 이는 무력 시위를 통해 미국의 개입 가능성에 대한 회의를 유도하고, 대만 내부 불안을 부추기려는 전략이다.
셋째, 대만 내부의 정치적 분열이다. 대다수 대만인은 중국의 지배를 원하지 않지만, 양극화된 정치 상황과 대중의 무관심은 안보정책 수립에 큰 장애물로 작용한다. 이로 인해 대만 정부는 효과적인 대응력을 갖추기 어렵고, 중국 침공에 더욱 취약해질 수 있다.
미국의 대만 방어 의지가 약화되면 대만 역시 저항 의지를 잃게 된다. 이 악순환은 미국의 개입 명분을 약화시키고, 결국 대만에 친중 성향의 정부가 들어설 가능성을 높인다. 이는 대만의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이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상황은 대한민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대한민국은 미국과의 견고한 동맹에 기반해 안보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우크라이나 사태처럼 대만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한국은 새로운 전략을 모색해야 할 수도 있다. 중국을 새로운 안보 파트너로 삼기엔 북한과의 관계상 현실성이 떨어지고, 이에 따라 핵무장을 선택할 가능성도 제기될 수 있다. 이는 한국, 일본, 주변국 간 군비 경쟁이라는 새로운 불안정성을 초래할 것이다.
트럼프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단순한 관세 전쟁을 넘어서, 글로벌 안보 지형을 뒤흔들고 있다. 과거 미국이 유지해온 국제질서의 공백이 무질서로 이어질지, 아니면 새로운 질서로 재편될지는 미지수다. 특히 경제 규모는 크지만 지정학적으로 취약한 대한민국은 지금이야말로 어떤 선택이 안보를 보장할 수 있는지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참고기사: https://www.economist.com/leaders/2025/05/01/a-superpower-crunch-over-taiwan-is-com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