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by 윌리엄 제임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은 최근에 읽은 책 중 가장 난해한 책이었다. 문체나 문장 구조가 매우 복잡하진 않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종교적 개념들이 낯설어 이해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종교적 경험은 철저히 개인적인 것이다. 개인에게 의미 없는 종교적 경험은 무의미하므로, 이러한 경험은 실용주의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따라서, 정해진 교리나 교파 혹은 시스템을 통해서만 종교적 경험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은 타당하지 못하고 그것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둘째, 현대 사회가 과학적인 접근법에 지배되고 있어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종교적 경험에 대한 우리 사회의 믿음은 매우 약하다. 하지만, 종교적 경험을 하고 종교적 경험으로 인해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따라서, 단순히 어떠한 현상을 증명할 수 없다고 해서 그 현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그러한 현상을 증명하지 못하는 과학적 접근법의 한계라고 이해해야 한다.
셋째, 종교가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종교를 믿는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종교에 대한 믿음, 의지 그리고 이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종교를 믿는다고 하여 무조건 적으로 종교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이성적 판단에 따라 옳고 그름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하고 이러한 능력을 갖추었을 때 종교적인 삶은 최고의 삶의 형태가 될 수 있다.
넷째, 종교적 삶은 우리가 반박할 수 없고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절대자가 제시하는 방향에 따라 완성되기 때문에 도덕적인 삶보다 훨씬 바람직하다. 따라서, 종교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은 위의 내용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첫째, 종교가 개인적 경험이라면 가톨릭 같이 체계화된 종교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둘째, 종교적인 삶이 도덕적인 삶에 비해서 인간과 세계를 보다 바람직한 세계로 만들어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개인적인 방법으로 종교를 경험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다고 하는 내용에는 동의한다. 신이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윌리엄 제임스의 말처럼 세상에는 신의 존재를 경험하고 그로 인해 새로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신의 존재는 개인만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개인이 신을 경험하고 깨달음을 얻은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해도 같은 경험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체계화된 종교는 종교지도자를 앞세워 깨달음을 얻는 방법을 정의하고 그에 맞는 절차를 만든다. 이는 오히려 사람들이 개인적인 방법으로 종교적 깨달음을 얻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체계화된 종교가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개인의 깨달음을 방해하는 행위가극단적인 종교인들을 양산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체계화된 종교 안에서 종교적 체험을 갈망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 따라서, 이들은 자기 스스로를 더욱 자책하고 책망하며 어떠한 행위를 통해서라도 자기가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를 쓴다. 이들의 절실함은 개인이 가질 수 있는 합리성을 압도하고 이는 종교지도자가 요구하는 극단적인 행위 (십자군 전쟁에 참여 혹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 테러를 가하는 행위)를 하도록 유도한다.
물론 개인의 합리성이 절실함을 이기고 극단적 행위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이 현대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이다. 이들은 개인적 종교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도 경험도 없고 가능성조차 믿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합리성에 기대어 종교를 비합리적인 것으로 치부한다. 이는 사람들이 종교적인 삶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를 파괴하고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뿌리를 파내는 결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이유로 합리적인 교육을 받은 선진 민주주의에서는 매우 극단적 종교인과 캐주얼하게 종교를 믿는 종교인으로 나뉘는 것이다.
물론 종교 지도자가 진정으로 종교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체계화된 종교 안에서 개인의 종교적 체험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환경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지도자들은 “정치”에 취약하다. 개인적인 종교 체험을 강조하는 종교지도자는 체계화된 종교의 힘을 파괴하기 에 종교 내에서 배척당할 가능성이 크고 또한, 자기의 세력을 형성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이러한 지도자가 체계화된 종교를 이끌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하지만, 개인적 종교 경험이 체계화된 종교 경험보다 압도적인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적 종교 경험은 아무나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매우 긴 시간 동안의 인내와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경험이라면 어떠한 가치도 지니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 종교가 필요한 사람은 현실세계의 문제가 있고 이로 인해 개인의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사람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러한 사람에게 개인적인 방법을 통해서 종교적 경험을 얻으라고 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하다. 또한, 에리히 프롬의 자유로부터의 도피가 말하는 것처럼 인간은 매우 나약하고 지속적으로 자기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절대자 혹은 무리를 찾는다. 따라서, 개인적 종교 경험은 바람직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한 방법이다. 오히려 체계화된 종교가 방향과 소속감을 제공하고 간접적으로 라도 종교적 경험을 제공한다면 끝내는 개인적 종교 경험이 가능할 것이다.
도덕적 삶보다 종교적 삶이 더욱 바람직한 이유는 무엇인가?? 종교적 삶도 궁긍적으로는 도덕적인 삶을 지향하지 않는가?? 오히려 절대자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도덕적인 삶을 정의 내릴 수 있는 삶이 더욱 바람직하지 않을까??
종교적 삶이 도덕적 삶보다 바람직한 이유는 윌리엄 제임스에 따르면 절대자의 존재에 있다. 절대자의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절대자의 존재를 믿는 개인은 자신의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또한, 지금의 삶이 매우 고통스러워도 절대자가 요구하는 삶을 산다면, 미래에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기본적인 전제를 가지는 종교적인 삶은 왜 도덕적 삶보다 바람직한가?
첫째, 인간은 본질적으로 완벽하지 못하다. 인간은 실수도 하고 실패도 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성이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로 만든다. 인간은 자기의 본성과 이성의 싸움 속에서 성장하는 존재다. 도덕적 삶을 사는 사람은 인간의 불안정성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간은 도덕적으로 완벽해야 하고 도덕적 완벽성이 개인을 정의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이 도덕적 완벽성을 목표로 살기 때문에 도덕적 삶은 근본적으로 불안하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또한 다른 도덕적으로 완벽하지 않은 존재에 대한 비관용적인 대응 또한 개인을 불안하게 만든다. 하지만, 종교적 삶은 인간의 완벽성을 요구하지 않는다. 절대자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불완전해야만 하고 이는 죄가 아니라 우리가 종교적인 삶을 살기 위한 전제조건일 뿐이기에 받아들이고 종교적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둘째, 도덕적 삶은 언젠가는 한계에 봉착한다. 위에 말한 개인적 문제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도덕적 삶에 대한 정의는 개인이 내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삶의 양식, 교육적 배경이 도덕적 삶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또한, 사람들이 도덕적 삶의 궁긍적인 목표를 나의 삶의 완성도로 정했을 때, 사회적 환경이 개인의 도덕에 대한 기준에 매우 큰 지분을 차지한다. 민주주의에서의 도덕성과 비민주주의의 도덕성은 매우 다르다. 비민주주의 국가에서의 도덕성은 국가가 나서서 정하게 되고 민주주의 국가에서의 도덕성은 미디어와 사회적 분위기가 정한다. 이러한 불안정성은 객관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개인의 노력을 파괴하고 잘못된 길로 인도하게 된다. 하지만, 종교는 절대자의 존재로 인해 모든 사회적 압박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왜냐하면 종교적인 삶을 사는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자로에 대한 복종이지 사회적 요구에 대한 순응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중국은 종교를 철저히 금지하고 중국만의 도덕체계를 확립하려고 하는 것이다. 중국인들이 종교를 믿고 절대자의 명령과 요구에 순응할 때 중국정부가 내세우는 가치관은 쉽게 부서지고 인민들에 대한 통제는 불가능하게 된다. 중국이 앞세운 도덕적 삶은 개인의 이상향과 자율성 그리고 영적으로 풍족한 삶을 파괴한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은 종교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종교적 삶은 다른 삶보다 우월하다. 종교적 삶은 사회를 사회를 더욱 풍요롭게 하고 개인에게 안식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적 경험의 장점은 개인적 종교 체험으로 인해 극대화될 수 있다. 또한, 종교적인 삶을 살려는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 종교적 극단주의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종교와 함께 개인의 이성과 냉철한 통찰력으로 자신의 행동을 끊임없이 돌아봐야 한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거 같다. 종교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나는 이 책을 읽고 종교적인 경험과 종교적인 삶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를 억누르고 있는 많은 사회적 편견과 기대를 해소할 수 있는 삶이 종교적 삶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던 나는 오늘도 나의 삶을 살아야 하고 그 삶은 종교적인 삶으로 대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종교적 삶이 이끄는 길에 대한 이해는 나를 더욱 올바른 길로 이끌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