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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사고, 공정한 사다리인가? 특권의 요새인가?

by 사회철학에서 묻다

자사고 폐지 찬성 입장


(1) 자사고는 계층 간 이동을 막는다

자사고는 교육의 기회를 제한함으로써, 사회 이동성을 저해한다. 이는 교육이 민주주의 체제에서 갖는 가장 핵심적인 가치에 반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사회 이동성: 민주주의는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전제하며, 계층의 고착화를 경계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자본의 축적 여부에 따라 계층이 나뉘지만, 교육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사다리다.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이 막힌다면, 민주주의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나 조선시대 양반제도와 다를 바 없어진다.


법치와 사회 안정성: 시민이 법을 따르는 이유는, 그 대가로 안정된 삶과 사회적 이동성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육을 통해 계층 이동이 불가능하다면, 법의 정당성은 약화된다. 자본주의에서 법을 잘 지켜도 자본이 없는 사람은 계속 가난해질 수밖에 없기에, 사회 계약이 무너질 위험이 생긴다.


그렇다면 자사고는 왜 계층 간 이동을 막는가?

자사고는 국공립학교보다 높은 등록금과 기숙사비, 교재비 등을 요구해 실질적으로 중산층 이하 가정에 진입 장벽을 만든다. 예를 들어, 상산고는 한 달에 약 100만 원이 든다.


자사고 입학에 요구되는 자기소개서, 면접 준비 등은 보통 공교육만으로는 어렵고, 사교육을 필수적으로 동반한다. 따라서 입시 컨설팅을 받을 여유가 없는 가정에서는 자사고 진학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자사고 입학생의 대학 진학률을 보면, 서울대 입학생의 약 44%가 특목고 출신이다. 자사고는 내신 불리함을 상쇄할 만큼의 학습 분위기와 우수한 교사진을 확보하고 있으며, 수시에서도 높은 경쟁력을 보인다. 자사고가 곧바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으로 이어지는 현실에서 자사고 진입 장벽은 곧 계층 이동의 차단을 의미한다.


(2) 자사고는 계층 간 교류를 막아 사회 통합을 저해한다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계층 간의 이해와 공감 속에서 성립한다. 고소득층과 저소득층이 교류하지 않으면, 서로의 니즈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회 정책에 대한 양극화된 반응만 초래된다. 예컨대, 고소득층이 저소득층 복지 정책을 무조건 반대하게 되면, 사회는 분열되고 불만은 극단으로 치닫는다.


사람들은 자신과 친분이 있는 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정책을 선호하지 않는다. 미국의 예처럼, 게이 친구를 가진 사람은 동성애 혐오 정책에 반대하는 경향이 높다. 마찬가지로, 고소득층 자녀가 자사고에만 집중되면, 저소득층과의 접점이 사라지며, 사회적 연대의 기반은 무너진다. 자사고의 높은 등록금과 입시 준비 과정은 이러한 단절을 가속화시킨다.


자사고 폐지 반대 입장

(1) 자사고 폐지는 교육의 다양성을 해친다

자사고는 정부의 획일적인 커리큘럼을 벗어나 다양한 과목과 활동을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의 개별적인 적성과 흥미를 존중할 수 있다.


교육은 모든 학생에게 똑같이 적용할 수 없다. 가장 적합한 교육은 학생 본인과 학부모가 판단해야 한다. 국가는 시민을 소유한 존재가 아니라, 시민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는 서비스 기관이어야 한다.


자사고가 입시 위주의 교육을 제공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이는 자사고 자체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다. 대학 서열 체제가 존재하는 이상, 자사고는 그 구조에 적응할 수밖에 없다. 입시를 중시하는 이유는 학생과 학부모가 그걸 원하기 때문이지, 자사고가 강제하는 것이 아니다.


(2) 정부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는 학교의 존재는 민주주의에 필수적이다

정부는 언제든지 정치적 이해에 따라 교육을 이용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국정교과서 논란은 이를 보여주는 사례다. 자사고 같은 독립적인 교육 기관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견제하고, 다양한 시각을 가진 시민을 배출하는 데 기여한다.


(3) 자사고 폐지는 지역 교육 격차를 심화시킨다

자사고 폐지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강남 8 학군 아파트 가격이 상승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자사고는 전국 단위 모집이 가능하지만, 일반고는 지역 기반이다. 교육열이 높은 계층은 결국 대치동, 도곡동 등으로 몰리고, 이 지역 부동산 가격은 폭등한다. 이는 자사고보다 훨씬 더 큰 불평등을 초래한다.


대안: 자사고를 없애지 말고 고쳐라

(1) 국공립학교의 질을 향상하자

교사 전문성 강화, 학급당 인원 축소 등으로 교육 수준을 끌어올리면 자사고의 필요성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2) 대학 입시 제도를 개선하자

내신 비중을 높여 일반고 학생들이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자. 자사고 특혜는 사라질 것이다.


(3) 사회통합 전형 확대

자사고의 장점을 유지하되, 소득기준 장학금과 사회통합전형 비율을 늘려서 기회의 평등을 실현하자. 이미 상산고는 사회통합 전형 10% 도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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