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의 흥망을 읽고 by 폴 케네디(2부)
1부에서는 폴 케네디의 『강대국의 흥망』을 바탕으로, 역사 속 강대국들이 어떻게 경제적·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부상했고, 왜 내부적 균열과 전략적 실수로 몰락했는지를 살펴보았다. 그는 강대국의 운명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을 경제력, 기술력, 동맹전략, 그리고 전선의 효율성으로 보았다. 특히 전체주의 국가들이 내부 권력 집중으로 인해 전략적 유연성을 잃고 몰락한 사례는 민주주의와의 비교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된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국제사회는 이러한 역사적 패턴에서 벗어났는가? 냉전이 종식된 이후, 세계는 민주주의의 확산, 자유무역체제의 정착, 핵 억지력, 지식산업의 성장 등으로 전쟁 가능성이 낮아진 듯 보였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이를 두고 ‘역사의 종말’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국-대만 긴장, 보호무역주의의 부활, 국제기구의 무력화 등은 그러한 낙관을 무너뜨린다. 21세기에도 강대국의 흥망은 반복되는 것일까? 지금부터는 폴 케네디의 이론을 바탕으로, 현대 국제질서 속에서 그 패턴이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본다
(6) “강대국의 흥망”이 가지는 현대 사회에서의 의미.
(6-1) 신흥강국과 강대국간의 전쟁은 사라질 것인가?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에서 기술된 것 처럼, 냉전시대가 끝나고서 신흥강국과 강대국간의 전쟁이 사라 질 것이라는 긍정적 세계관이 국제관계를 바라보는 주된 시선이었다. 이들은 “민주주의의 출현”, “자유시장경제 체제의 도래”, “지식산업으로의 발전” 그리고 “핵무기의 존재”가 이러한 세계를 뒷받침해주는 새로운 체제의 기반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첫째, 민주주의의 출현은 국민국가가 전쟁을 수행하기 어렵게 만든다. 민주주의에서 대통령과 정치인들에게 권력을 부여하는 것은 국민이다. 국민들이 반대하는 정책을 시작할 수는 있지만, 선거라는 제도 때문에 국민들의 반대하는 정책을 유지할 수는 없다. 미국의 반전 여론이 베트남과 이라크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의 철수를 이끌어 냈다. 전쟁이란 필연적으로 사회적 물적자원과 인적자원의 희생과 손실을 동반한다. 강대국의 전면전을 더욱 더 그러하다. 따라서, 시민들은 침략이나 거부할 수 없는 도덕적 책임이 있지 않은 전쟁은 대체로 반대하고 이는 전쟁의 가능성을 낮춘다. 또한, 다양한 민주주의 경제장치로 인해 미치광이 독재가 단독으로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0으로 수렴한다.
둘째, 자유시장경제의 출현은 국가간의 상호의존성과 긍정적 미래에 대한 기대의 확산이라는 2가지 면에서 국민들이 전쟁에 반대하게 만든다. 자유시장경제와 국제무역의 증가는 국가간의 상호의존성을 증가시켰다. 식민지 경제에서는 더 많은 식민지의 확보가 경제성장을 의미했다. 문제는 식민지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었고, 한정된 자원을 쟁취하기 위한 국가간의 전쟁은 불가피했다. 영국이 인도라는 거대한 식민지를 확보했고, 인도를 통해 국가의 성장을 도모한것은 독일에게는 큰 걱정거리였다. 이는 독일이 영국의 식민지를 빼앗고자 하는 전쟁을 일으키게 했다. 하지만, 자유시장경제에서는 타국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자동차 생산을 위해서는 각 나라에서 생산한 본네트, 엔진, 볼트등 다양한 상품의 수입이 필수적이다. 자동차를 생산하면 끝인가? 아니다 생산된 자동차를 구입해 줄 수출국이 존재해야 한다. 따라서,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전쟁은 일어날 수 없는 악몽일 뿐이다.
또한, 자유시장경제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나와 내 가족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경제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지속적 경제성장이라는 미래가 없을 경우, 지속적인 퇴보만 존재한다면 전쟁이라는 목숨을 담보로한 도박은 할만한 도박이다. 하지만,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면?? 아무도 전쟁이라는 도박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을 것이다.
셋째, 지식산업으로의 발전 또한 전쟁의 가능성을 낮춘다. 자본 추구를 위하 전쟁은 승진국에게 어마어마한 이득을 제공한다. 자원이 나오는 국가에 대한 지배권을 자원의 지배권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지식산업으로 발전하고 있다. 전쟁은 지식산업을 파괴한다. 전쟁으로 인해 희생되는 사람들의 지식은 죽음과 함께 사라진다. 운이 좋게 지식을 갖춘 사람들의 희생을 최소화한 승리일지라도 나의 원수에게 지식을 기꺼이 전수할 사람을 많지 않다. 오히려 자유무역을 통해 타국의 지식을 흡수하고 배우는 것이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는 방법이 되었다.
넷째, 핵무기의 출현은 상호확증파괴라는 전쟁의 무시무시한 결과를 일으킬 수 있다. 국가는 전쟁을 통해 유무형의 이득을 얻기를 원한다. 이는 국토의 확장일 수도 있고 국민성의 회복 혹은 국제사회의 영향력 향상 일 수 도 있다. 국가는 전쟁의 장점과 단점을 분석하고 장점이 단점을 압도할 경우에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하지만, 핵무기의 출현은 모든 유무형 이득의 가능성을 분쇄한다. 전쟁에 이기더라도 핵무기에 피해를 본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실제로 2차 세계 대전이후 “핵무기 보유 국가들” 끼리의 전쟁은 한차례도 없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제공하면서 러시아 본토로의 사용 금지라는 조건을 내건 것 또한 궤를 같이 한다. 핵무기 보유 국들은 핵우산과 군사기지 배치라는 정책을 통해 상호확증파괴를 통한 전쟁의 억제를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6-2)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 대만의 대립으로 인해 발생한 새로운 세계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과 중국 대만의 대립은 전쟁이 없을 것이라는 장미빛 미래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첫째,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8년에 “After decades of triumph, democracy is losing ground”라는 기사에서 전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다고 서술했다. 많은 국가들이 민주주의 국가의 무능력과 부패한 모습에 실망해서 민주주의를 버리고 전체주의 체제를 선택하고 있다. 러시아, 중국은 푸틴과 시진핑을 필두로 독재주의를 천명하고 있고 인도와 터키 또한 전체주의 정책을 채택하면서 그들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이런 국가들의 세계에서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이전에는 다른 이데올리기를 가진 국가들의 대리전 양상이 주된 전쟁의 모습이였지면, 지금은 전체주의 국가들이 전면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는 민주주의가 아니기 때문에 국민들의 의견보다는 푸틴의 정치적 목표가 더욱 중요하고 그는 자신의 정치적 목표 달성을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중국 또한 시진핑의 경제정책이 실패를 거듭하면서 대만과의 전쟁을 통해 국내의 불만을 해소할 것이라는 인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문제는 민주주의 국가들이 우크라이나와 대만을 돕는데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폴 케네디는 민주주의 국가가 안정권에 이르게 되면 군사적 지출은 줄이고 경제 사회적 지출을 높인다고 말했다. 국민들은 평화에 익숙해지면 전쟁에 대한 두려움은 잊어버린채 현재 삶의 향상에 목적을 두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향이 미국과 유럽국가들이 우크라이나와 대만에 대한 원조에 주춤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미국은 가까스로 하원의 승인을 받아 우크라이나에 대한 원조를 실행했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이 된다면 우크라이나 뿐만 아니라 NATO에 대한 원조 및 참여를 그만둘 가능성이 크다. 이는 중국의 대만 침공 뿐만 아니라 터키와 인도가 자국의 이득을 위해 군사적 행동을 하게 만들 여지를 제공할 수 있다.
둘째, 자유무역체제가 약해지고 자국보호무역주의가 다시성행하고 있다. 코로나 대위기 속, 국제공급망이 파괴되었다. 이에 위기를 느낀 많은 기업들이 “on shoring”을 통해 시작된 반 자유무역정책이 한때는 자유무역의 신봉자였던 미국과 유럽의 경제정책을 바꾸고 있다. 미국은 “Inflation reducation act” 그리고 유럽은”europe green deal”과 “european sovereignty fund”등을 통해 자국 기업을 보호하고 있다. 이는 국가간의 상호의존성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타국의 경제와 기술 성장은 우리의 적이라는 인식을 확립해 전쟁의 가능성을 높일수 있다. 특히 미국은 중국을 겨냥해 기술의 전파를 막는 봉쇄정책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적개심과 적이라는 인식을 부추겨 상호멸망의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셋째, 핵무기는 핵무기 보유국들의 직접적인 충돌을 막고 있다. 하지만, 핵무기 군비경쟁을 막아왔던 “NEW START Treaty”같은 조약들이 파기될 위기에 처해있다. 핵무기 군비경쟁은 각 국가의 경제적 투자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우발적 핵무기 사용의 가능성을 눈에 띄게 높여준다. 상호확증파괴는 대립하는 국가들이 합리적이라는 전재하에 성립된다. 대립하는 국가들이 합리적이기 위해서는 2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어느 국가도 한명이 단독으로 핵무기 사용을 결정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사람은 여러가지 영향으로 비합리적인 행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합리적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상호 정보 교환이 필수적이다. 핵무기에 선재공격을 당하게되면 반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고 하더라도 더 큰 피해를 입게된다. 상대방의 모든 행동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군대의 재배치 혹은 미사일 지지대 설치등을 핵무기 발사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에 핵무기 사용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러시아, 중국같이 독재체제의 증가는 핵무기 사용의 단독결정성에 대한 가능성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이 국가들과 서방 국가의 대립은 정보 교환의 가능도 사라지게 된다. 북한이 남한과의 분쟁 후에 꼭 연락선을 파괴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따라서, 핵무기의 유무가 평화를 상징하는 상징성은 파괴될 수 있다.
(6-3) 미국의 중국 러시아 고립 정책을 옳은가?
그렇다면 미국의 중국 러시아 고립 정책은 옳은가? 위에 언급한 것처럼, 미국은 중국과 러시아에 마이크로칩과 같은 기술의 이전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의 자본은 중국의 과학기술 분야에 투자할 수 없고, 대한민국의 삼성과 sk도 미국이냐 중국이냐의 죽음의 이지선다를 맞다들이고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첫째, 폴 케네디의 상대적 우위이론에 따르면 미국의 선택은 합리적이다. 중국은 정보의 무분별한 이용으로 통한 ai발전 혹은 특허법을 존중하지 않고 무분별한 복제 그리고 국가의 불법적 자본지원등을 통해 불평등한 경쟁을 하고있다. 이는 중국의 경제와 기술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고 이는 미국의 헤게모니 위치에 도전하고 있다. 따라서, 기술 이전 금지와 각종 자국 기업 보호 정책은 미국의 중국을 경제하는데 도움이될것이 분명하다.
둘째, 강력한 동맹체제의 확립이라는 측면에서도 매우 바람직해 보인다. 대한민국은 중국과 미국 사이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통해 이득을 얻어왔고 대만과 필리핀 같은 다른 아시아 국가들 또한 마찬가지다. 미국의 “inflation reducation act”는 아시아와 유럽 국가들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미국과의 동맹에 힘을 쏟으라는 간접적인 요구인 것이다. 또한, 미국과 운명을 같이함으로서 국제경제와 정치질서를 파괴하려는 중국세력을 견제하는 효과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여러가지 문제도 있다.
첫째, 과연 고립 정책은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미국의 중국 고립 정책의 결과는 중국의 퇴보가 아니라 멕시코 같은 제 3국을 통한 우회 무역의 증가를 불러일으킨다. 이는 중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분노는 높여 추후에 있을지 모르는 전쟁의 가능성을 높이지만 실질적 타격을 없다.
둘째, 고립 정책은 미국인들에게도 경제적 피해를 준다. 이코노미스트가 보도한 미국의 중국 바이오 기업 수출입 철폐는 위험약품뿐 아니라 전방위적 약품에 대한 수출입 또한 규제하고 있어 미국인들이 더 비싼 가격에 질이 떨어지는 약품을 구입하게 만들고 있다. 또한, 무역은 자원의 효율적 분배에 이바지 하는데 자원의 비효율적 분배는 세계 경제성장을 떨어뜨리고 이는 서방국민들이 억압적 정책에 동의하게 만든다. 이는 제2의 도널드 트럼프를 양산할 가능성을 높인다.
(7)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인가?
해결책에 대해서 논의하기 전에 폴 케네디가 이야기 한 강대국의 싸이클에 대해서 다시 이야기 해보자. 강대국은 경제 군사적 우위를 바탕으로 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한다. 하지만 여력이 있는 신흥강국들은 역사적 인식 뿐만 아니라 우위를 향한 본능적인 움직임을 통해 지속적으로 강대국에 도전한다. 신흥강국과 강대국의 싸움은 전쟁으로 이어지고 이는 인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우리는 현대사회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와 전쟁이 다시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2가지 이유에 대해 의논했다. 우리가 이런 논의를 통해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민주주의 국가가 많아지면 전쟁의 가능성은 줄어든다.
둘째, 하지만 불균형한 발전은 민주주의 정부의 매력을 떨어뜨리고 전체주의로의 회귀를 발생시킨다.
민주주의 체제는 자유무역 경제체제를 도입해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불평등을 모두 발생시켰다. 경제적 불평등은 정치적 평등의 상승과 함께 불만을 느끼는 시민집단의 탄생을 만들었고 이는 전체주의 즉 전쟁의 가능성을 높였다. 따라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민주주의를 통한 보다 평등한 국제 경제의 성장이다. 이는 미래의 전쟁가능성을 줄일 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에 대안적 이데올로기를 제시해서 장미빛 미래오의 복귀를 촉구할 수 있다. 하지만, 평등한 국제 경제의 성장이 가능할까?? 현재의 국제사회를 기반으로 생각한다면 불가능하다. 평등한 국제 성장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2가지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7-1) 자본주의식 평가에 대한 인식 전환
평등한 국제 성장이 불가능한 이유는 경제적 성공이 개인에 대한 평가의 최우선적 척도가 되는 자본주의식 접근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의 대회 정책은 시민들의 요구를 따를 수밖에 없고, 경제적 성공이 성공의 척도가 되면 국제관계는 공생이 아니라 경쟁의 관계로 간주한다. 자유무역협정은 협정국 모두에게 경제성장을 위한 척도가 아니라, 자국의 경제성장을 위해 더 많은 것을 얻어야 하는 관계로 변질된다. 보호무역주의는 모든 타국을 짓밟더라도 자국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정치인들의 수사로 시민들에게 선택된다. 보호무역주의가 자국의 경제를 보호한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모든 국가의 경제성장에 손해를 끼친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첫째,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에 따르면 다른 정체성과의 대립을 통해 형성된 정체성은 두 개체 모두 피해를 보더라도 경쟁이 되는 정체성이 더 큰 피해를 본다면 만족한다.
둘째, 도널드 트럼프와 같은 서구 정치인이 출현 원인이 된 반체제 운동은 경제학 지식이 동반된 장기적 분석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용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정체성과 불신은 Populist에 의해서 이용되고 국제무대에서의 경쟁은 갈수록 불을 뽑는다.
따라서, 해결책은 시민들을 우매한 대중으로 취급하는 사실을 전달하는 “교육”이 아니라 자국 내에서의 평등한 사회구조와 성공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동반된 사회적 인식의 변화다. 자본주의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성공을 평가할 수 있는 단일한 접근이 사회 내에서 구성원 간의 부를 향한 경쟁을 부추겼다. “아버지”, “국가 기반 산업에 이바지하는 공장 노동자”, “가족을 돌보는 가족 구성원” 등 경제적 성과에 대한 평가를 배제하고 그 자체의 사회적 기여로 인해 평가받던 정체성은 사라지고 없다. 오히려 경제적 성공을 포기하고 사회적 가치에 이바지하는 정체성은 무시당하고 비웃음을 사고 있다. 이러한 접근에 대해 과감하게 철퇴를 내리고 다양한 정체성이 존중받을 수 있을 때, 평등한 국제 경제 발전 또한 시민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단기적 물질적 만족보다는 장기적인 도덕적 혹은 인류애적인 접근에 대한 찬양과 그 선택에 대한 자부심이 인정받을 수 있을 때 평등한 경제성장을 동반한 민주주의의 세계적 번영 또한 가능하다.
(7-2) 국제기구의 역할 변화
2차 세계 대전 이후, IMF, World bank 그리고 WTO 등은 개발도상국에 발전의 기회를 제공하고 공평한 자유무역을 통해 세계의 안정화를 도모하려는 목적을 통해 설립되었다.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경험한 각국의 지도자들은 참혹한 세계대전의 재발 방지를 위해서는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이라는 2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는 것에 지각했다. 하지만, 각국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초기의 목적은 퇴색했고 각 국제기구는 선진국의 이득을 대변하는 기구로 전락했다. 이들 각 국제기구는 설립 목적을 정확히 인지하고 각자가 설립 목적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 이에 대한 방법으로 투표권과 영향력의 확대를 통한 발언권의 증진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개발도상국 발언권의 확대는 미국과 중국 등 자기 영향력을 높이려는 강대국의 파워게임의 악화를 가져올 뿐이다. 이보다는, 초기 설립 목적 달성이 가능케 하는 민주주의 기본이 되는 헌법과 비슷한 강제력을 가진 기본법을 제정하는 것이 정답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의 확산은 세계 평화를 지키는데 필요충분조건이다. 하지만, 역사가 보여주듯이 평등한 경제발전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의 확산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가능하더라도 그 끝은 populist 정부의 득세일 것이다. 내가 제안한 해결책이 실현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인류가 2차 세계 대전 후, 자각을 통해 끌어낸 긴 평화의 세계 또한 그 당시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불가능한 세계였다. 불가능성보다는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고 이를 위해서는 시민 개개인의 역사를 이해하고 대안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전쟁은 더 이상 불가피한 운명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이다. 그러나 그 선택을 오도하는 것은 불균형한 발전과 시민들 사이의 불만이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단순히 무기를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의 구조 자체가 공정하고 평등해야 한다. 폴 케네디의 역사적 통찰은 지금 우리에게 묻는다. “지속 가능한 평화는 가능하며, 그것은 선택 가능한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과거를 넘어, 미래의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